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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나무 - 2015년 3월 17일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5-03-17 17:49:26
  • 조회수 3649
첨부파일 2015年 3月 17日.hwp

생각하는 나무                採 根 談          洪 自誠     지음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나지만 후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風來疎竹(풍래소죽)에 風過而竹不留聲(풍과이죽불유성)하고 雁度寒潭(안도한담)에 雁去而潭不留影(안거이담불류영)이라.

故(고)로 君子(군자)는 事來而心始現(사래이심시현)하고 事去而心隨空(사거이심수공)이라.


대숲에 바람이 불어오면 소리가 나지만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대숲에는 소리가   남지 않는다.

기러기 떼가 호수를 지나가면 그림자가 비치지만 기러기 떼가 지나가고 나면 호수에는 그림자가 남지 않는다.

이처럼 군자도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움직이고 일이 없어지면 마음도 따라  이전과 같이 된다.


어떤 일이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끈기 있는 집착과 집념을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시야가 좁혀져 버리면 마음의 자유로운 기능을 잃게  되어 정신상으로 동맥경화증을 일으킨다.

스스로 굳은 신념이라면 자부하는 것도 때로는 편협한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 수 가있다.一點注視(일점주시)라든가 一事專念(일사전념)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유로운 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초한지로 본 토사구팽

조직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兎死拘烹(토사구팽)이다.

사냥꾼이 토끼를 잡고 나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흔히 토사구팽은 지도자의 간교한 본성. 혹은 인간의 본능적 이기심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초한지에 등장하는 토사구팽의 이야기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그 의미가 다소 왜곡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토사구팽은 春秋時代(춘추시대)월나라의 재상이었던 범려가 쓴 편지에 처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유방과 한신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다시 쓰이면서 비로소 유명해진 것이다.

유방과 한신의 관게를 토사구팽으로만 설명을 한다면 유방은 자기 이익을 위해 공을 세운 한신을 버린 냉혈한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한신만 내치고 소하와 장량은 내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유방은 천하를 제패한 직후에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을 세 명의 뛰어난 참모 덕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 세 명이 소하. 장량. 한신이다. 만약 유방이 정말로 이기심 때문에 자신이 모든 공을 차지하려고 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세 명다 처치했어야 했다. 하지만 소하는 가장 큰 공을 인정받아 그 후에도 유방을 보좌 했고 장량은 스스로 또 다른 길을 선택하여 나름의 행복을 찾았다.


따라서 유독 한신만이 유방의 이기심에 의해 토사구팽을 당했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엄격히 말해서 정황은 이렇다. 한신은 유방에게 적지 않은 실수를 했고 그 수위가 때로는 유방을 위협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한신의 첫 번째 실수는 유방에게 원수 같은 존재였던 종리매를 숨겨준 일이다. 한신과 종리매는 과거 붙어 친분이 깊었고 오랫동안 허물없이 지내온 사이었다. 이후 시대의 격랑 속에서 각기 다른 진영에 속하게 되었으나, 다행이 싸움터에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서로가 비록 적이라고 하나 특별히 악의를 품을 만한 사건이 없었기에 한신은 위기에 처한 종리매를 숨겨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방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종리매의 숨통을 끈어 놓으라는 명령을 전군에 내려둔 터였다. 그런데도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종리매를 숨겨 주었으니 이것이 한신의 첫 번째 실수다. ( 2부는 다음시간에 )


투르게네프 ( 러시아 )

톨스토이와 톨스토에프스키와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부흥을 이끌었다.


투르게네프는 그의 저서 “父子(부자)”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양자는 2개의 다른 世代(세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세대의 차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성세대는 흔히 보수적이기 쉽고 새로운 세대는 혁신적이고. 또 기성세대는 현실주의 적인데 반해 새로운 세대는 이상주의적이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양자의 견해는 다를 수밖에 없고 서로 자기 주장을 너무 세우다 보면 자꾸 충돌하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서로 상대방의 견해를 이해하여 절충 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좋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차이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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