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들의 보금자리 명진들꽃사랑마을

명진소식

  • HOME
  • 우리들의 이야기
  • 명진소식
성암 황용규 이사장 산문 (외 지팡이)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0-11-26 14:03:30
  • 조회수 877

  외 지팡이

                                                                                    성암 황용규


칭얼대는 동생 석규를 달래 등에 업고 영천 무악재고개를 넘어 홍제동에 있는 화장터를 찾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죽은자와 산자가 마지막으로 육신을 대면하는 장소다. 그 곳에 살길이 있다고 두 형제가 막연한 생각으로 험준한 산길을 걸어간다. 등에서 내려 석규 손을 꼭잡고 두려운 마음을 잿빛 하늘에 맡기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을 의지하고 먼 길을 다리에 힘주어 걸어간다.

화장터 옆 공동묘지 언덕배기 아래 군대용 커다란 천막 다섯 개가 빛바랜 얼굴로 가난을 끌어 안고 궁상스럽게 웅크리고 앉아 고통을 토해내고 있다. 흙을 파서 나무를 겨대어 만든 계단 몇 개를 딛고 올라선다. 누런 벽돌과 판자를 덧 부쳐 만든 회색 건물이 사무실이란 누군가 멋을 부려 쓴 검은 명찰을 내밀고 의시대고 서 있다.

서너 뼘 되는 유리가 아침 햇살에 얼굴을 맞기고 미소를 짓고 있는 문짝을 옆으로 밀어내고 동생 팔을 잡아끌며 안으로 들어간다.

참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앙상한 몸으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허우적대고 있는데 안경을 콧잔등에 걸치고 의자에 앉아 졸고 있던 뚱뚱 아주머니가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커다란 엉덩이에 깔려 숨을 헐떡이던 의자가 삐걱 거리며 밀려 책상 모서리로 밀려 난다.

 

어린아이는 구두닦이를 할 수 없어 함께 살수 없다는 아주머니 원장님의 단호한 거절을 콧물 눈물을 섞어 구걸을 한다.

슬픈 음성에 생명을 담아 세멘 바닥에 무름을 꿇고 동생 석규 손을 잡아 당겨 안치며 간곡함을 토해 낸다. 비굴한 형제의 모습을 번갈아 살피던 아주머니 원장님이 육중한 몸을 의자에서 일으키더니 느린 걸음으로 창가로 가서 덜컥거리는 창문을 흔들어 옆으로 밀고 밖에다 대고 누군가를 부른다.

 

문이 덜컥 비명을 지르더니 덩치 큰 아저씨가 카키색 작업복을 입고 커다란 발을 디밀고 들어 선다. 큰 놈은 3소대 작은 놈은 5소대 넣어 보기하고는 다르게 카랑카랑 한 목소리로 지시를 하신다. 형과 동생이 각기 다른 막사로 끌려간다. 형과 떨어지는 게 겁이 난 동생 석규가 형을 부르며 아저씨 손에 끌려가며 울음을 터트린다. 발버둥 치며 땅바닥에 딍군다.

 

형이 뒤돌아 뛰어가 동생을 안고 달랜다. 입으로는 연신 울지마, 울지마, 하면서 형의 찌어진 마음이 콧물까지 범벅이 되어 동생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린다.

두 놈이 엉켜 우는 것을 물끄럼히 바라보던 아저씨가 기분이 나쁜가 보다. ' ! 이새끼들 눈물짜고 지랄이야!' 하며 철규 엉덩이를 걷어차며 ' 재수 없는 새끼 네 동생 데리고 나가 짜샤' 거친 숨소리에 담아 속내를 드러내고는 발길을 돌린다. 철규가 매달리듯 아저씨 바짓가랑이에 대고 '저기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동생을 달래 볼께요.' 아침 풀잎에 앉아 졸던 이슬이 햇살에 밀려 떨어지는 힘없는 모습을 하고 철규가 동생을 가슴으로 안으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사정을 한다.

 

거친 발자국 소리만 던져주고 가던 길을 가며 ' 재수 없는 새끼네 '하며 투들렁 댄다. 그래 그렇다 그가 보기에는 꼴불견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야단친 사람도 없는데 제발로 살겠다고 찾아 온 것 아닌가 형제가 떨어져 살라는데 지구가 뒤집어 지는 것처럼 둘이 쿳물 눈물 짜면서 부둥켜안고 우는 것이 시세 말로 눈뜨고 볼 수 없는 가관이다.

온 갓 먼지를 뒤집어쓰고 아침과 저녁에 잠간씩 스쳐가며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두 형제는 막사 생활에 길들여져 갔다. 형과 동생은 각기 다른 시간에 아침을 먹지만 둘은 강냉이 죽 한 대접으로 빈속을 채우고 형은 구두약통을 들고 돈 벌러 나가고 일곱 살 어린 석규는 사무실 바닥 청소와 취사실에서 설거지로 하루를 연다.

 

해가 서산마루 위에 서서 하루의 피로를 구름위에 붉게 뿌릴 때 구두 딱 던 자리를 정리하며 하며 동생 석규의 얼굴을 그제서야 마음에서 꺼내 살며시 드려다 본다.

어둑어둑 해가 그림자를 덥고 누울 때 그릇 씻기를 마치고 행주를 꼬옥 짜서 부뚜막에 걸쳐 펴서 널며 꽁꽁 언 손을 겨드랑이에 집어넣으며 형 철규의 얼굴을 가슴에서 꺼내 본다.

 

두 형제가 생명의 끝자락을 붙잡고 발버둥 치고 있는 곳은 참 아름답고 참 경건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천사학교다. 형제는 그곳에서 배웠다. 천사학교에는 천사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그곳에 육신을 밀어 넣고 슬픈 시간을 삼키며 사는 몸과 마음이 빈곤한 천사들의 아침 식사시간 노래가 눈물을 흘리며 양재기에 담긴 강냉이 죽 위에 힘없이 눕는다.

 

"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니 은혜로 오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아멘 "

 

강냉이 죽 그릇을 앞에 놓고 부르는 노래다. 왜 태어 낳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하루하루를 질긴 생명 줄을 원망하는 이들의 얼굴에 하나님에 대해 감사 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다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그것도 큰 소리로 부르지 않으면 그나마 강냉이 죽도 못 얻어먹고 뱜 몇 대 맞고 구두약통에 화풀이 하며 돈 벌러 가야 한다는 현실에 착하게 적응하기 위해 부른다.

 

때에 따라서는 밤이 두렵다. 관리하는 선생님들이 퇴근하고 나면 덩치크고 힘센 놈이 제왕이 된다. 밤에 몰려 나가 술을 먹고 들어오면 잠자는 어린 생명들이 놀이 개다. 일으켜 세웠다 눕혔다. 마당에 집합시켰다. 엎드려 뻐쳐로 벌을 주다가 기분이 나쁘면 몽둥이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린다. 줄 몇 칸 건너 꼬맹이들 자리에서 울음이 터진다. 울면 매를 더 맞는 것을 아는 중간치들은 소리죽여 흐느낀다. 철부지들은 겁에 질려 꽁꽁 언 땅에 손바닥을 펴고 엎드려 운다. 발길질이 날아간다. 발길에 채인 작은 고깃덩어리가 나뒹군다. 동생 석규의 울음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가슴이 찢어진다. 슬픔이 악으로 변한다. 그러나 약자다. 그래서 이유 없이 맞아야 하고 고통을 참아야 한다. 여기가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천사학교다.

 

그래도 천사학교가 좋다. 천사학교에 있으면 전처럼 대낮에 상이군인이나 깡패들한테 매를 맞지 않는다. 서대문경찰서 보호를 받는다. 직업청소년으로 인정이 되기 때문이란다. 마음 놓고 구두를 닦을 수 있어 좋다.

세상에 공자가 있는가? 절대로 없다. 천사학교에 하루 번 돈의 3분의 2를 숙식비로 내야 한다. 참 이상한 나라다 돈을 내면서도 매는 매대로 맞으며 산다는 것이 그런대도 그곳을 떠날 수 없다는 것 참 많이 이상한 생활구조가 아닐 수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돈을 낸다는 것은 억울하지 않다. 하루 밤도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없는 것, 불안을 말아 안고 공포를 뒤집어쓰고 새벽을 기다려야 한다는 밤의 세계가 왜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당연하게 받아드리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생존에 위협을 받아야 하는지.

아주 가끔이지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날이 있다. 아침에 꽁보리밥이지만 된장을 풀어 만든 멀건 국물에 말아 후르륵 먹는 날이다. 이런 날을 여기서는 누구 생일이냐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기분을 나눈다.

 

찬바람이 뺨을 할퀴고 귀를 쥐어뜯으며 소리 내어 울던 날 아침 강냉이 죽에 짠 무 한 조각으로 배를 채우고 구두약통을 챙겨들고 언덕을 걸어 내려가는데 막사 뒤에 숨어 기다리던 석규가 손짓으로 형을 부른다. 한 울타리 안에 살면서도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하기는 오랜만이다. 형은 형대로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동료들보다 먼저 아침을 먹고 일터로 가야 한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에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구두 닦아! 신 닦아! 하고 힘주어 목구멍에서 소리를 끌어 올려 골목길 담장 넘어 보내야 한다.

 

'! 구두 닦기야 ! ' 하며 부르는 음성이 목덜미를 끌어당길 때는 머리가 앗질 하며 얼굴에 미소가 활짝 핀다. 이걸 가리켜 마숫거리 운수대통이라고 한다. 그런 날은 기분이 좋고 신이나서 좋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다른 날 보다 구두를 한두 켤레를 더 닦게 된다.

 

동생의 손짓을 따라 천막 뒤로 끌려들어 간다. 해를 안고 돈 벌러 나갔다가 달빛에 떠밀려 천사학교로 들어오는 일상생활에 길들여져서 마음과는 달리 동생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산 시간이 너무 길었다.

 

석규가 잠시 망설이더니 형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작은 소리로 ' 형아 나 여기 도망간다.' 눈 보다는 눈썹이 예쁘게 생긴 석규가 눈 가에 작은 이슬을 담으며 손을 내민다. 당황한 형이 ' 왜 무슨 일 있어? 전 번처럼 어디 아퍼? 숨이 막히는 가슴을 쓸어 담으며 급한 마음을 앞세우고 궁금증을 토해 낸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안스러운 눈빛으로 동생이 내민 손을 슬며시 잡는다.

 

까칠하다, 소나무 껍질을 만지는 것 같다. 아홉 살 어린 동생의 손이다. 형이 흠칫 놀란다. 동생 손을 끌어당겨 자세히 본다. 손등이 터져 찢어지고 듬성듬성 핏빛이 보인다. 얼어서 동상이 걸린 손가락은 파랗게 부어 있다. 보얗고 토실토실한 손은 없다. 눈물이 핑 돈다. 슬픈 눈이 눈물을 보인다. 목젖을 타고 따뜻한 물기가 넘어간다.

 

'석규야1 형이 저번에 사다 준 멘소리 크림 안 발랐어?'말은 부드럽게 하지만 속에서 울컥 쏟아져 나오는 눈물은 얼굴을 적신다. 뜨거운 피가 심장을 폭파시키며 용광로처럼 튀어 오른다. 어린 형제의 나약한 생명 줄이 끈어지려나 보다.

 

1955년 독립투사의 각오로 비가 오면 지붕위에 언져 놓은 양철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뒷쳐기며 밤을 새우기도 했던 천막집을 남겨두고 하루를 거르지 않고 술을 마시고 들어와 징그러운 벌레를 보듯 눈을 아래위로 뜨며 혼자 세상을 원망하다가 혼자 흥분해 겁에 질려 우는 형제를 큰놈은 발길로 차고 작은 놈은 집어 들어 천막 밖으로 집어 던져 삶에 지치고 인생에 배신당한 화풀이를 하던 아버지에게 전 재산을 양보하고 천사학교로 이주해 온지 1년이다.

 

기쁨과 슬픔이 마음과 생각을 나누어 주며 머물다간 자리에 빛이 스며든다.

목록





이전글 로그인 (성암 황용규 등단 시 중에서...)
다음글 사랑하며 살아요^^ (-사랑- 성암 황용규 시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