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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을 바꾼 은(銀) 이야기(박종인 글)-2019.02.26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9-03-18 10:09:10
  • 조회수 2992

생각하는 나무 " 국권을 바꾼 은() 이야기 " 박종인 글

 

조선(朝鮮)은 은()을 버렸고 일본(日本)은 은()을 손에 쥐었다.

1543년 왜 세상이 바뀌었나. ?

16세기 초 발명된 첨단 제련법은 세상을 꾸었다. 조선만 빼고 온 세상을 바꿔놓았다. 기회를 발로 차버렸던 조선(朝鮮)이야기다.

 

16세기는 대 항해의 시대였다. 유럽은 신항로를 따라 인도와 동남아시아와 명나라를 찾았다. 유럽과 아시아가 무역으로 연결되는 시대였다. 포르투칼 상인들에게 일본 물품을 팔고 은을 수입했다.

1526년 이즈모에서 은광이 발견 됐다. 오우치 가문(家門)은 은광 옆에 산성을 쌓고 부()의 원천으로 삼았다. 주변 세력들 사이 몇 차례 공방 끝에 1562년 모리(毛利) 가문에 넘어 갔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했다. 모리(毛利) 가문은 은광을 히데요시에게 헌납 했다. 그때 이와미 은광 생산량은 세계 1위 였다. 하지만 일본은 제련술에 관한 한 후진국이었다. 매장량에 비해 떨어지는 품질과 생산량은 일본 광업계의 난제였다. 그런데 이와미 은광이 발견되고 20년 이 못 돼 상황이 급변했다. 해마다 조선에 후추 소가죽 따위를 팔러 왔던 일본 사절단이 양질의 은을 가져와 면포와 교환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조선정부는 15천 냥 어치만 매입하고 무역단을 돌려 보냈다.

= 조선인 기술자 종단과 계수 =

1533년 하카다의 상인 가미야 주테이가 종단과 계수와 함께 은광에 와서 회취법을 시작했다. 조선과 달리 여전히 재래식 제련법으로 은을 만들 던 일본이었다. 조선의 첨단 제련법인 회취법을 배우기 위해 조선인 두 사람을 초빙한 것이다. 이후 이와미 은광은 볼리비아를 제치고 생산량이 세계 1위 은광이 되었다.

 

1429년 세종이 명나라 황제에게 금과 은을 조공품에서 제외해 달라고 그 편지의 내용이 이랬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척박해 금과 은이 생산되지 않음을 천하가 다 아나이다. 그래 얻어 낸게 조공에서 금과 은을 제외 받았다.

 

이후 1740년 영조는 새 은광이 발견 됐다는 보고에 개발을 금지 했고, 1836년에도 헌종이 금광과 은광 개발을 금지 시켰고 개발하다 들키면 국법으로 엄히 다뤘다.

 

이는 사대주의와 성리학적 도덕론에 의해 조선의 은()은 빛을 보지 못했다.

사대주의 조공에 밀리고 사욕이 생기면 근면과 성실이 상실 된다는 성리학에 밀려 국가의 부강을 스스로 버린 것이 조선이다.

 

()의 역습과 일본

일본은 은광이 있는 몰라카에 집단 주거지 까지 만들어 포르투갈 상인과 무역을 했다. 1543년 포르투갈 상인을 태운 중국 상선이 일본 가고시마 다네가시마에 도착했다. 도주(島主) 다네가시마 도키다카가 이들로부터 철포 2정을 구입했다.

1549년 오다 노부나가 가 철포제작 노하우를 전수 받은 쿠니모토에게 철포 500정을 구입했다. 철포로 무장한 노부나가에 이어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통일을 완성했다. 히데요시는 은()으로 은화(銀貨)를 만들었다. 그리고 철포(鐵砲)와 군선(軍船)을 구입했다.

 

1592년 음력 413일 새벽 철포부대를 포함한 18천여 일본군이 700척이 넘는 배를 타고 대마도 오우라항구를 빠져 나갔다. 이것이 " 임진왜란 "이다.

 

조선이 무시한 철포와 조선이 부도덕하다고 몰아 붙였던, ()의 역습(逆襲)이다.

 

3. 1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는 우리가 한 번쯤 생각을 해 볼 역사 이야기다.

지금도 기술직인 기능공 보다는 사무직을 선호하는 국민정서 이고 보면 그리 멀리 가지 않아서 중국과 일본이라는 옛 정세를 답습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는 마음은 나 하나 뿐이 었으면, 좋겠다.

권력의 아부와 힘의 논리는 조선시대보다 더 국정을 농단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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