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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6 - 생각하는 나무 (가슴 설레게 하는 사람)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4-23 18:16:42
  • 조회수 202

생각하는 나무 < 가슴 설레게 하는 사람 > 전호림 산문

 

연말이 다가오면 이것저것 돌아보고 반추할 일이 많다. 연초에 설계한 대로 살아왔는지 물욕과 애욕에 초심이 흐려져 마음의 때는 또 얼마나 끼었는지.

사람들은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 ... 하고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일. 후회스러운 일. 한 두가지를 갖고 있다. 그건 좀 손해 보고 털었어야 할 주식이나 아파트일 수 있다. 욱하고 내버린 사표일 수도 사소한 일로 싸움을 키워 이혼 얘기까지 나오게 된 부부간의 일일 수도 있다.

나는 연말이면 휴대폰 연락처를 정리한다. 하나씩 넘기며 더하고 지우는 작업을 하다 보면 용케 이름은 남아 있는데 얼굴이 안 떠오르는 사람도 있고 꽤 친한 사이지만 오랫동안 연락을 못 하고 지내는 이도 있다. 확 지워버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한 번 만난 사람을 세세히 다 기억할 수 없게 된 뒤로 나는 이름 아래쪽 노트난에 미니 신상카드를 만들어 두고 있다. 그곳에 새로운 정보를 넣거나 빼고 어떨 때는 명단 자체를 통째로 지우기도 한다.

연락처를 삭제하고 추가하는 작업은 큰마음 공부가 된다.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이름은 지울 때는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고 잠시 숙연해진다. 그런 명단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에서 알게 된다. 깊어서 유속을 느끼지 못하는 강물처럼 세월 역시 유장하지만 살처럼 빠르게 지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몇 달 전까지 함께 밥먹고 거닐 던 망자를 지워야 할 때는 기분이 묘해진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폰에서 지워질 것이다.

더 심란한 것은 살아 있는 사람 이름지울 때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 번호를 지우고 있는가? 머리가 자동으로 계산해서 지워라. 남겨라. 손끝에 명령을 내리지만 왜 삭제하느냐고 정색하고 되물으면 설명이 궁해진다.

사람인 이상 역시 생각만 해도 닭살 돋는 상대가 있다. 그런 사람도 처음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흔쾌히 명단에 올랐겠지만 대게 시간이 지나면서 파경을 맞는다. 물론 어떤 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쫀득한 인간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희한해서 내가 상대를 뱀 가죽 대하듯 하면 그 사람 또한 날 소 보듯 하게 된다. 그쪽 명단에도 내 이름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정리하는 대상에는 생돈을 떼였거나 보증을 서 주었다가 집을 날리게 한 사람도 들어 있다. 자신에게 치명적이 손실을 안기고 야반도주해버린. 그래서 두고두고 고통을 주는 철천지원수의 번호는 절대 못 지운다고 한다. 행여 그 귀신(?)을 찾아낼 단서라도 될까 싶어 놔둔다는 것이다. 괜한 짓인 줄 알면서도 1년에 몇 번씩 번호를 눌러서 기어이 <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국번이거나 .. ..> 하는 메시지를 확인하고서야 끊는다. 미워서 지워야 할 이름. 미우니까 못 지울 이름이

있고 좋아서 남겨야 할 이름. 좋으니까 저장하지 저장하지 못하는 번호가 있다.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나에게 득이 될지 손이 될지를 먼저 따지면 소인배라고 어릴 적부터 귀가 따갑게 들으며 자랐다. 세상 모든 사람이 돈 많은 이. 권력 가진 이. 잘생긴 이만 찾아다니면 세상은 얼마나 팍팍하고 흉측한 모습일까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거기에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爲)는 말처럼. 부족한 사람에게서도 배울 게 있는 법이다.

<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이라는 책을 쓴 곤도 마리에는 버릴 물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근거로 그 물건에 마음이 설레는지를 보라고 조언한다. 나는 누구에겐가 설레는 사람이었던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 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 ... ” (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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