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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0일 - 생각하는 나무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3-08-20 10:06:39
  • 조회수 3125

빛나지 않는 별은 없다

지은이 황 태영

저자(著者)의 글 중에 바보 새를 함께 생각하는 시간(時間)으로 준비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던 신라시대(
新羅時代) 화가(畵家) 솔거는 벽화 노송도(老松圖)로 유명(有名)합니다. 얼마나 정교(精巧)하게 잘 그렸는지 새들이 실제 소나무로 착각(錯覺)해 날아와서 부딪치곤 했다고 합니다. 언젠가 어릴적 책()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읽을 때는 바보 같은 새들이라며 무심코 넘겼던 일화(逸話)가 지금은 문득 가슴을 때립니다.

 

웃음이 하도 그럴듯해 진짜인 줄 알고 달려가다 비수(匕首)에 머리를 부딪치고 상처(傷處)받는 경우가 간혹(間或)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진실(眞實)과 감사(感謝)를 진짜로 믿었다가 거짓과 위선(僞善)에 깨어지고 으깨지는 바보 새가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닫고 슬픈 미소(微笑)를 짓습니다.

 

진짜보다 더 정교(精巧)한 가짜가 판치는 세상(世上)이니 계속 바보 새로 살아가야겠지만 마음은 가볍습니다. 속이는 사람보다 속는 사람이 더 복()되고 아름답다고 바보 김수환 추기경(樞機卿)이 말씀하신 것이 속 좁은 마음에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입산(入山)

지은이 황 태영

()은 정복(征服)의 대상(對象)이 아니라 깨달음의 대상(對象)입니다.
(
)의 깊은 맛은 빨리 오르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물소리 새소리에 자신(自身)을 잊는 것입니다. 모두 전쟁(戰爭)하듯 더 높이 오르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정상(頂上)에 도달(到達)했다고 산행(山行)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정상(頂上)은 가장 높은 정점(頂點)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世界)와 만나는 시작점(始作點)입니다. 그래서 선현(先賢)들은 등산(登山)이라 하지 않고 입산(入山)이라 했습니다.

 

()에 든다는 것은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숨 가쁘게 오르는 것이 아니라 유람(
遊覽)하듯 거니는 것입니다. ()에 든다는 것은 흙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며 물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세상(世上)과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후담(後談)

밀턴은 44세에 실명(失明)을 하고 15년 후() 불후(不朽)의 종교(宗敎) 서사시(敍事詩)로 일컬어지는 실낙원을 완성(完城)했습니다. 밀턴의 실명(失明)은 가혹(苛酷)한 시련(試鍊)이였습니다. 생애(生涯)의 대부분을 글 읽기에 할애(割愛)했던 학자(學者)에게 독서(讀書)가 불가능(不可能)하다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苦痛)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장님이 된 것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좌절(挫折)하는 것이 불쌍한 것이다고 하며 대작(大作)을 완성(完城)했습니다. 큰 축복(祝福)을 받고도 불행(不幸)한 사람이 있고 큰 불행(不幸)도 축복(祝福)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진 것의 과다(過多)와 능력(能力)의 유무(有無)가 중요(重要)한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과 노력(努力)이 중요(重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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