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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2 - 생각하는 나무 (땅강아지)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4-24 11:21:00
  • 조회수 9

생각하는 나무 < 땅강아지 > 수필가 김정식 글

 

서리가 내려서 땅콩 가을걷이를 서둘러야 한다며 함께 가자는 지인의 말에 경기도 여주로 나들이했다. 땅콩밭까지는 농로를 제법 걸어야 했다. 한 달 전까지 연노랑을 머금던 평야가 이제는 진노랑 즙을 삼킨 듯했다. 논두렁에선 들풀 마르는 냄새가 진하게 번졌다. 벼잎 위의 메뚜기. 강아지풀에 살포시 몸을 앉힌 고추잠자리를 보니 옛 기억이 불현듯 살아났다.

땅콩밭에 도착하니 하트모양의 잎과 보라색 줄기를 가진 고구마도 바로 옆 뙈기밭에서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일하던 땅콩밭 주인이 고구마와 땅콩은 옛날 배고팠던 시절 구황작물로 재배했는데 뿌리가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기 쉬운 모래밭에서 잘 자라 여주를 대표하는 작물이라고 소개했다. 또 이 동네 밭은 친환경 농법 덕에 토양이 오염되지 않아 땅강아지도 자주 나타난다고 했다.

땅콩 줄기를 당기자 아닌 게 아니라 땅강아지 서너 마리가 딸려 나온다. 딸려 나온 땅강아지들은 눈이 부시다는 듯 앞발로 사례를 치며 몸을 좌우로 흔든다. 그중 한 마리를 집으니 예나 지금이나 미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바로 옆 고구마밭에서 일하던 농부가 땅강아지는 식물 뿌리를 먹어 속이 상하지만 땅을 파 산소를 공급하고 빗물도 잘 스며들게 하니 밉지만은 않다고 했다. 또 힘이 세고 공격성이 강한 가물치나 뱀장어 낚시에는 땅강아지를 최고의 미끼로 친다고 한다. 아마도 땅강아지의 왕성한 움직임 때문일 것이다.

길에 포장이 안 돼 온통 흙이었던 시절 아이들은 독이 없는 야행성 곤충인 땅강아지를 잡아서 장난감 삼아 놀았다. 어릴 적 평상에서 저녁을 먹을 때라면 땅강아지는 전등이 있는 평상 쪽으로 다가왔다. ‘ 나도 좀 끼워주라는 듯 말이다. 이는 땅강아지에게 빛을 쫓아가는추광성趨光性이 있어서다. 그러던 땅강아지들이 모습을 감추게 된 건 급속한 도시문화로 땅이 없어진 탓이다.

필자도 실의에 젖었던 어린 시절 땅강아지를 집어서 아래에서 위로 보기도 하고 책상 위에 놓고 기어가는 모습을 봤다. 확대경으로도 관찰했다. 확대경으로 들여다본 땅강아지는 온몸이 강아지털처럼 부드러운 털로 덮여 있었다. 삽날처럼 생긴 종아리는 넓적하고 튼튼해 아주 듬직한 모습이었다.

땅강아지도 검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는 듯했다. 땅강아지의 검은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땅강아지와 교감하는 일이 소소한 낙이 되자 땅강아지로부터 알게 모르게 힘과 기를 받았다. 그때 세상에는 천기天氣만 있는 게 아니라 지기地氣도 있다는 걸 실감했다.

땅강아지와의 우정은 그 후에도 계속됐다. 주말이면 근교에 나가 땅강아지를 찾았다. 땅강아지의 주 거주지는 땅속이고 핵심 역량은 땅 파는 재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재주도 조금씩 있다.

날기도 하고 기어오를 줄도 알며 물통 속에 넣으면 앞발을 움직이며 헤엄치기도 한다.

땅속에서 나와 강아지와 같은 발랄함을 보여주는 땅강아지에게 땅과 강아지를 합쳐서 작명한 데서 옛사람들의 재치가 느껴진다. 두더지처럼 땅을 파는 땅강아지의 생김새는 귀뚜라미를 딺아서 영어로는 모울 크리킷mole cricket이라 한다. 모울mole은 두더지를 크리킷cricket은 귀뚜라미를 의미해서다. 땅강아지와 모울 크리킷 어느 쪽이 더 예쁜 이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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