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나무 “ 86세 신구 ” 이태훈 기자

< 연극 라스트 세션 >

“ 심장 박동기를 다셨대 ... ” “ 어쩜 좋아. 관객과 약속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고 ... ”

연극 라스트 세션 첫 공연 날인 8일 서울 대학로 티오엠 극장 로비. 삼삼오오 모인 관객들 사이에서 배우 심구(86)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2020년 이후 세 번째 시즌을 여는 이 연극에서 신구는 다시 정신분석 학자이자 20세기 무신론의 ‘ 선지자 ’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6)를 연기한다.

신구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지난해 초 급성 심부전증으로 심장 박동기 이식 수술을 받은 걸 고백했다. 자꾸 느려지는 심장 박동을 정상 속도로 조절해주는 기계. 감정과 신체적 변화가 극심한 무대가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그는 언제나처럼 초연하게 말하곤 한다. “ 이 계가 8 ~ 10 년쯤 간다니까, 그땐 내가 없을 테니 충분해, 무대에서는 하루하루가 고맙고 모든 게 소 생큐( so thank you ) 지. ” 제목 라스트 세션 ( Last Session )은 정신분석학자의 마지막 ( last ) 상담 ( session )이라는 뜻이다

신구는 개막일인 이날 오후 2시와 5시 두 차례 공연을 모두 소화했다. 친딸처럼 그를 깍듯이 모시는 제작사 파크컴퍼니 박미정 대표는 “ 유퀴즈 ”출연 뒤 인터뷰 요청이 많지만, 체력을 생각해 다 사양하고 오직 공연에만 집중하신다 “ 고 했다.

연극의 배경은 나치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개시하며 2차 대전의 불길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1939년 9월 신과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바람 앞 등잔불처럼 흔들리고 있던 때였다. 런던에 망명해 있던 83세 프로이트(신구)가 훗날 위대학 기독교 변증가가 되는 마흔 살 옥스퍼드대 교수 C S 루이스(이상윤)를 만났다면 어떤 논쟁을 벌렸을까. 연극은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다.

극 초반 피란 행렬 때문에 약속에 늦은 걸 사과하는 루이스에게 프로이트는 말한다. ”“ 내가 여든세 살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했을 텐데 말이오 ” 구강암으로 악화된 프로이트에게 루이스가 “ 다음 기회로 미룰까요. ” 묻지만 프로이트는 냉정하게 대꾸할 뿐이다. “ 미룬다고? 선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소? 나는 안 그래요. ” 대사들이 마치 신구 자신의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많이 야윈 모습이 걱정스러웠던 건 잠시뿐. 노배우의 목소리는 금세 쩌렁쩌렁 소극장을 울리기 시작했다. 고통으로 가득 찬 역사 신의 존재 유무, 양심과 도덕율.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역사성. 등에 대해 논쟁을 벌일 때, 무대에는 불꽃이 튀는 것 같다.

재기 넘치는 논쟁에 폭소도 많이 터지지만 유독 객석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많이 들리는 연극이기도 하다.

노배우가 건강하게 공연을 완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무대 안팎과 객석이 모두 한 마음이다.

공연 뒤 신구 배우는 “ 작년 재연 때보다 8kg쯤 빠졌다. ” 고 했다. 하루 두 번 공연이 벅차지 않으신가 묻자 활짝 웃으면 답했다. “ 배우는 무대에 서는 게 기쁨이지 몸이 가벼워서 오히려 더 좋아 ”

신구와 연극 “ 앙리 할아버지와 나 ”를 함께 했던 배우 박소담은 분장실에서 공진단 두 달 치를 놓고 갔다. “ 두 교황 때도 사오더니. 소담이 요새 돈 잘 버나? ” 고마움을 표현하는 노배우의 농담에 분장실의 모두가 함께 웃었다.

“ 선생님 내일 식사는 어떻게 하실까요? ” 박대표가 묻자 신구는 “ 도가니탕 ”이라고 했다. 이전 공연 때는 배가 부를까 봐 분장실 식사는 김밥이었다 “ 근데 따뜻한 국물을 먹어보니 그것도 좋더라고 ” 첫날 공연을 마족스레 마친 노배우가 또 활짝 웃었다. 그 미소가 유달리 건강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노배우에게 기립 박수를 보낸다. 그중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며 노배우의 연기에 녹아든 마음을 아낌없이 힘찬 박수로 노배우에게 돌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