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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2 - 생각하는 나무 (삶의 향기)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4-24 11:00:05
  • 조회수 6

생각하는 나무 < 삶의 향기 > 글쓴이 전상직

 

타이르는 말을 기꺼이 듣는 사람은 지식을 사랑하는 자이나. 책망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다. 구약 성서에 솔로몬의 잠언 121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 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영문을 찾아보니 타이르는 말로 귀담아듣고 그것이 옳다면 싫더라도 따르라. 라는 뜻으로 쓰여있다.

한고조(漢高祖) 유방에게 장량이 공자의 말씀을 빌려 이렇게 했던 것처럼 충언은 귀에 거슬리니 행실에 이롭고 독한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습니다.

오래전 어떤 TV프로 그램에서 사회자가 길 가던 여고생에게 던진 질문과 대답.“ 잔소리와 충고가 어떻게 다르지요?” < 잔소리는 듣기 싫은 말이고 충고는 기분 나쁜 말이에요. > 최근에 초등학생에게 잔소리와 충고가 어떻게 다르지요? ”하고 물었다. <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 뒤이어 이런 자막이 등장한다. 노 터치 no touch. 난 나야 I am me. 넌 너다. you are you. ’ 으레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니까. ’ 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만 보아도 듣는 이 입장에선 타이름은 잔소리이고 충고는 참견이고 조언은 오지랖이다. 좋은 얘기도 재미있는 얘기도 무엇보다도 별 도움이 되는 얘기도 아니면서 내 의지에 반하는 그 무엇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듣고 기분 좋을 리 없다. 가치관을 달리하는 사람의 시선은 불편하고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조언은 거북하고 우월한 지위나 우월감에 근거한 충고는 자존감에 생채기를 낸다. 무엇보다도 결정에 대한 긍정적 책임의 주체는 나이니 제발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게 듣는이의 솔직한 심정이다.

잔소리와 충고를 기분 나쁘다고 했던 그 초등학생들이 사춘기 소녀가 되어 다시 등장한다. “ 젊은 세대와 잘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이 질문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 그냥 세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요? ” 덧붙여 어른이 되면 꼰대가 된다. ” 라며 일침을 가한다. 그야말로 내 인생은 나의 것. my life is mine.이니 모든 간섭을 거부한다는 선전포고다.

경험이 곧 삶의 지혜였던 시절. 세태의 변화가 한가한 소걸음처럼 느릿느릿하던 시절. 어른의 말씀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고 마을이나 집안의 뜻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던 시절과 달리, 오늘의 어른은 온갖 자동화기 앞에서 절절매고 말 한마디 하기에 앞서 그것이 라떼나 꼰대 소리 들을 이야기는 아닌지 눈치를 살핀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이 경험과 연륜에 의한 지식과 경직된 가치관과 아집으로 격하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니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

! 세월이여. ha years. ! 세태여. O! mores. 라는 키케로(BC 106~BC 43)의 탄식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늘 있었던 말이지만 이 세상은 늘 더 나은 곳으로 변해 왔으니 그 말은 언제나 구세대의 푸념이었을 뿐이라며 외면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른으로서, 아니 이 사회 구성원으로 해야할 도리가 아니다. 보기에 불편한 것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고 염려하는 것은 세상의 흐름을 미쳐 좇지 못하기 때문이고. 언짢은 것은 내 뜻과 저들의 뜻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들과 함께해야 마땅하다.

성공한 30대 여성 사업가 줄스와 퇴직 후 회사를 다시 찾은 70대 시니어 인턴 벤의 이야기 인턴(2015). 모든 사람이 무시하고 아무런 일도 주지 않으니 벤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친근함과 배려로 젊은 이들의 마음을 얻고 경험과 연륜으로 그들의 온갖 고민과 어려움을 해결하며 어느새 그들에게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 오베라는 남자 )“ 프레드릭 배크만 를 원작으로 한 영화 < 오토라는 남자 2022 >의 오토는 퇴직 후 아내를 따라 세상을 뜨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이웃을 돕느라 번번이 기회(?)를 놓친다. 운전이 서툰 이를 대신해 주차하느라고. 이웃의 난방시설을 수리하느라고 이웃의 아이를 대신 보고 얼어 죽을 위험에 처한 길고양이를 돌보느라고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려다 말고 철로에 추락한 사람을 구하느라고 이렇게 급한 일(?)부터 처리하느라 죽음을 하루하루 미루다가 어느새 그는 가장 소중한 이웃이 되어 버렸다.

이게 사는 거지 .. .. ”라는 그의 독백이 귓가에 맴돈다. 그리고 심장이 너무 크다라는 의사의 말이 그의 사인(死因)이 아니라 그의 따뜻하고 어른 스러운 행실에 대한 은유로 들린다.

 

참조: 위 내용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는 논리로 그래도 경륜은 살아 숨 쉰다. 꼰대의 나때라는 단어가 인생길 앞서 걸어온 어른들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어른이 없이 젊은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생물학적 학문이 정의를 제시한다. 과거가 없는 현재가 존재할 수 없다. 잔소리도 충고도 과거의 언어言語 사용법을 현실에 부합된 언어로의 표현이 서투를다 보니 서로 이해가 상충되어 언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변질되어 전달되고 오해 아닌 오해소통의 칸막이를 형성하게 된 것이 아닌가. 변화한 시대에 맞는 용어 즉 현 시대를 사는 이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가 요구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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