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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5 - 생각하는 나무 (그냥 걷다 보면)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4-24 10:58:13
  • 조회수 5

생각하는 나무 < 그냥 걷다 보면 > 신유진 글

 

아침 마다 좋아하는 길을 걷는다. 옅은 안개가 발목을 감고, 하룻밤 사이에 마법처럼 자란 풀들이 눕는 길을 걷는 것은 나를 가두는 일상에 작은 창문을 내는 일이다.

지난밤에는 비가 왔고 오늘 아침에는 그 길을 발끝으로 걷는다. 손톱만한 달팽이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다. 무용수처럼 발끝으로 통통 걷다 보면. 밤새 나를 괴롭혔던 복잡한 생각들은 사라지고. 달팽이들의 느린 움직임만 남는다. 물론 느리다는 것은 내 기준일 뿐. 달팽이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알맞은 속도일 것이다. 길 양옆으로 야생풀들이 우거졌다. 녹색과 주황색 보라색과 노란색이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서로 다른 속도로 각기 다른 색으로 어우러지는 것들 사이에서 인간이란 존재를 생각해 본다. 욕망도 계획도 차고 넘치지만. 사실은 그냥 자고 일어나면 어딘가를 향해 걷는 존재가 아닐는지.

멀리 간 사람도 제자리걸음인 사람도 한생이 전부다. 보폭이 넓거나 좁거나 딱 한생 만큼 걷는다. 그런 마음으로 길을 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달팽이나 야생 풀처럼 그 길에 놓인 작은 존재. 그냥 걷는 사람이 된다.

 

뉴욕에서 시베리아를 향해 꼬박 3년을 걸었던 릴리언 올링의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다. 그녀가 대장정을 떠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난무했지만. 그 책의 저자는 그녀가 그냥떠났고 그냥걸었을 것이라고 추축했다. 확실히 걷기는 그냥이라는 부사와 잘 어울린다. 걷다보면 보게 되고 만나게 되고 느끼게 되는 모든 것은 대체로 그냥 온다. 어쩌면 그냥이 아니라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영원 앞에 순간을 사는 인간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냥 걷고 그냥 보고. 그냥 감탄하는 것만이 인간의 몫인 것 같다.

 

매일 걷는 사람으로서 걷는 요령 하나를 공유하려 한다.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할 것. 나에게서 멀어질 것. 점점 작아지는 나를 인정할 것. 나를 뺀 커다란 세상을 바라볼 것. 감탄할 것. 그렇게 걷다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냥 걷기만 해도 괜찮은 이 삶이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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