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나무 “ 외모 중심 시대의 슬픈 이야기 ”
한 중년 여인이 어린 남자아이를 데리고 어느 대기업 건물 앞에 있는 정원의 벤취에 앉아 성난 표정으로 아이를 훈계하고 있었다.
마침 근처에서는 노인 한 분이 정원의 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 여인이 핸드백에서 화장지를 꺼내더니 노인이 일하는 쪽으로 휙 던졌다.
노인은 여인을 힐끔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여인이 던진 휴지를 집어들고 휴지 통이 있는 곳으로 가서 버렸다. 그리고는 나무 자르는 가위로 이리저리 뻗은 나뭇가지를 정열하게 자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여인은 아이 코를 닦은 화장지를 또 던졌다. 나뭇가지를 전지하고 있던 노인은 묵묵히 화장지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노인이 다시 나무를 막 손질하려는 데 세 번째 화장지가 그의 눈앞에 툭 떨어졌다.
여인의 무례한 행동을 반복하는 동안 노인은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여인이 아이에게 나무를 손질하는 노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렇게 하는 것이었다.
“ 너 잘 봤지? 어릴 적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저 할아버지처럼 힘들고 비천하게 거름뱅이처럼 노동 일하게 돼 ”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손에 잡은 나무 자르는 가위를 내려 놓고 아이와 여인이 있는 쪽을로 다가 갔다.
“ 부인 이곳은 회사 소유의 정원이라 직원들만 들어 올 수 있습니다 ”. 정중히 나가달라는 의미로 말했다.
“ 그거야 당연하죠. 전 이 회사 소속 계열사의 부장이에요. ” 당당하게 큰 음성으로 노인을 향해 말하고는 아이를 쳐다보고는 다신 노인을 향해 “ 하시던 일이나 하세요 ” 명령조로 아이가 들으라고 힘을 주어 말했다. 그리고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노인을 흘켜보며 목에 걸고 있던 회사 신분증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노인이 정중하게 “ 휴대전화 좀 빌려주겠소? ”
노인이 여자에게 부탁하자 여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노인에게 휴대전화를 건네 주었다.
그 여자는 이때다 싶어서 기회를 이용해 아이에게 한 마디 더 덧붙였다.
“ 저렇게 나이가 들었는데도 휴대전화 하나 없이 궁색하게 사는 꼴 좀 봐라. 저렇게 안 될려면 열심히 공부해야해. 알았지? ”
휴대전화를 건네받은 노인은 통화를 끝낸 후 “ 고맙습니다. ”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한 남자가 급하게 달려 와 노인 앞에 예의를 갖추었다.
노인은 그 남자에게 말했다. “ 저 여자분 인적사항을 확인해서 내 책상에 갔다. 놓게 ” “ 알겠습니다. ” 지시하신 대로 처리해 보고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치 노인은 아이 쪽으로 걸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의미심장하게 속삭였다.
“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
이 짧은 한마디만 남기고 노인은 자신이 하던 나무 전지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뜻밖의 상황에 너무 놀랐다.
노인의 지시를 받은 남자는 여인도 잘 아는 분이었다. 남자는 그룹에서 인사를 담당하는 임원이자 그녀와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었다.
여인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 어째서 당신은 저 정원사에게 그렇게 깍듯이 대하는 거죠? ”
“ 무슨 소리야 정원사라니? ”
“ 저 분은 우리 그룹의 회장님이셔. ”
“ 뭐라고요? 회장님?” 여인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벤취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걷 모습만 보고 판단한 일 순간의 실수로 평생직장을 날려 버린 것이었다.
지위나 신분을 보고 사람을 존중해서는 안 된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존중의 정도를 조절하는 비인간적인 기회주의 자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타인은 존중하는 것이 곧 나를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그러므로 무엇이던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아멘 ( 마태복음 7장 12절 )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지요.
“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은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은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아멘 ( 마태복음 7장 1절 – 2절 말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