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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 생각하는 나무 (참회록쓰지 않는 사회)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4-24 10:38:50
  • 조회수 9

생각하는 나무 참회록쓰지 않는 사회 박성희의 커피하우스에서

 

참회록 은 윤동주 시인이 1942년 조국에서 쓴 마지막 시의 제목이다. 반성과 성찰의 상징인 거울 을 통해 부끄러움의 미학을 전하는 이 시는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로 시작하여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로 맺는다’. 24세를 갓 넘긴 젊은이가 무어 그리 참회할 일이 있었을까.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란 이 고운 청년은 이듬해 독립운동을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 형을 선고받고 해방을 6개월 앞두고 숨을 거둔다.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고해성사를 요청했으나 교구장에게 거절 당한다. 그러나 니콜라 빌렘 신부가 그에게 고해성사를 해주었고 2011년 천주교회는 비록 살인을 했지만. 그를 사복추진 대상자로 선정한다.

이 반듯한 31세 청년은 15가지에 이르는 이토의 죄목을 나열하면서도 이토를 살해한 것에 대해 사죄했다. 그의 정결한 인품이 일본인도 감동시켰고 이문열 소설의 제목처럼 죽어서도 천년을 살고 있다.

나라를 잃었거나 나라를 빼앗길 경각의 시기에 이 땅에 살다간 인물 중엔 이렇게 상상도 할 수 없게 맑은 인물들이 있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겪었을 고초와 번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역사의 아픔조차 자신의 부끄러움과 잘못으로 성찰하는 이들에게는 내면에 양심이라는 거울이 있었기에 그게 가능했다.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내면의 거울은 중요한 성찰 도구다. 인간이라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장 자크 루소는 다섯 자식을 유기한 일을 포함한 과거 허물을 모두 고백록에 담아냈고, 톨스토이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느낀 순간 위선과 교만에 찬 과거를 돌아보는 참회록을 썼다.

초대 그리스도교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13권에 걸쳐 자신의 모든 죄악을 고백하고 생활을 반성한 참회록을 펴냈는데. 이 책은 기독교 3대 고전 중 하나로 1600년 넘게 읽히고 있다.

그토록 원했던 나라를 되찾고 전쟁과 분단을 넘어 눈부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오늘날 대한민국에 참회록 따위는 개나 줘버릴 이름이 되어 버렸다. 톨스토이의 고전古傳까지는 아니더라도 윤동주 이후 참회록을 접한 기억이 없다.

그동안 개인이나 집단이 여러 역사적 고비에서 시행 착오를 했을 텐데 도무지 잘못했다는 사람이 없다. 반성하는 집단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스스로 비춰볼 거울이 없거나 비춰 보더라도 보이는 모습을 외면했거나 아니면 그 둘 다일 것이다.

 

참회록 듣기만 해도 무거워 보인다. 이에 비해 회개 는 훨씬 가벼운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참회와 회개의 다른 의미는 뭘까 좀 더 알고 싶은 생각에 조심스럽게 국어 사전을 찾아 보았다.

懺悔(참회)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잘 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 그러니 懺悔錄참회록 이란 글 뜻대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록일게다. 우리나라 현대사회에 들어서서 참 많은 분들이 자서전이란 이름으로 글을 써서 자신을 알리는데 사용했다. 그런 훌륭한 글 가운데 어느 분도 자신의 과거에 잘못을 고백하는 글은 없다. 자신의 성장기도 천재에 가까운 행동으로 주변으로부터 추앙을 받았다는 칭송으로 미화한 글이 첫 장부터 끝장까지 도배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은 말해 무엇하겠나만 그래도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출판기념회에 다녀와서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悔改(회개)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는 것. 죄스러운 생활 태도에서 탈피하여 바른길로 가겠다는 생각의 변화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 역시 지난날의 잘못을 고백하고 새로운 삶을 살 것을 다짐하는 것이니 스스로 생활의 변화를 다짐하는 것일 게다.

 

참회가 됐건 회개가 됐건 뉘우침이란 전제하에 우리 모두 마음에 담고 한 번쯤 생각해 볼 과제가 아닌가. 용서라는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자신이 자신을 용서한다는 의미는 되씹어 보고 싶은 말 중 하나이다. 타인에 대한 것보다 자신에 대한 용서가 엄격해야 한다. 자신에 관대하고 타인에 엄격하다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참회가 됐건 회개가 됐건 사람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살아야 한다. 자신을 정죄하지 못하면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정죄한다면 이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제 눈에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만 본다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동역자로서 이런 우는 범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에 글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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