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들의 보금자리 명진들꽃사랑마을

명진소식

  • HOME
  • 우리들의 이야기
  • 명진소식
2022.12.06 - 생각하는 나무 (호박꽃)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4-23 18:29:17
  • 조회수 13

생각하는 나무 호박꽃 변 재용

 

신념의 꽃이 있다. 옥토와 박토를 고집하지 않는다. 논두렁 밭두렁이면 어떠랴. 햇빛 한 줄기 드는 곳이면 쇄석 자갈밭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뼘의 빈 땅만 허락하면 가나안의 복지인 양 바득바득 덩굴손을 뻗어 꽃을 피운다. 인심 넉넉한 외할머니를 닮은 꽃 담장 위에 노란 별로 뜨는 꽃이 호박꽃이다.

소낙비 한 줄금 긋고 간 아침 텃밭을 뒤지던 뒤영벌 한 마리가 나를 시간 저편으로 끌고 간다. 유년시절. 초가집 일색인 동내에 유일한 기와집이 우리 집이다. 땡감나무에 몸을 숨긴 쓰르라미가 목청을 돋우면 담장 위에는 분칠한 듯 노랗게 핀 호막꽃이 맑고 투명한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셨다.

내겐 어머니가 둘이다. 살을 주신 어머니는 내가 일곱 살일 때 병마로 하늘의 별이 되셨고 지금은 키워주신 새엄마와 다복하게 살고 있다. 내게 어머니란 존재는 포근함도 친숙함도 아니다.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 분은 영원한 그리움이고 한 분은 갚을 수 없는 고마움이다.

새엄마는 혼기를 놓친 노쳐녀였다. 겨우 밥 걱정이나 면한 살림에 꼬질꼬질한 강아지 넷이 깔린 홀아비에게 생의 전부를 걸만 했을까. 사람들은 쯧쯧혀를 찬다. 지나칠 정도로 과묵한 새엄마는 실한 엉덩이를 빼면 볼품이 없었다. 우묵주묵한 뱃살 자유분방한 얼굴에 들창코까지 천하의 박색이었다. 근동에서 미인으로 이름난 어머니가 장미라면 새엄마는 어린 내 눈에도 분명 호박꽃이었다. 부드러운 천성까지 호박꽃을 빼닮은 새엄마는 소처럼 일만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여름은 호박꽃의 계절이다. 이른 봄. 씨앗을 심으면 숨기척을 내기 무섭게 넌출은 가뿐하게 울담을 타고 올라 푸짐한 꽃 잔치를 벌린다. 능글맞게 달달 볶은 한 낮의 열기도 개숫물 한 바가지면 족하다. 이기적인 인간에게 햇순을 무참히 꺾인다 해도 절망하거나 요절하지 않는다. 더 많은 줄기를 뻗어 마디마디 열매를 품는다. 잎을 내고 줄기를 뻗는 옹골찬 기상 만은 칠월의 태양 볕보다 뜨겁다.

호박꽃은 집념의 꽃이다. 허공이든 장벽이든 가리지 않는다. 표독스러운 탱자나무 울타리도 기필코 오르고야 마는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꽃이다. 황무지에 맨몸을 갈면서도 열매를 맺는 게 호박꽃의 운명이라면 각박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 또한 사람의 몫이 아닐까? 어쩌면 <성실>이라는 단어는 사람보다는 식물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호박꽃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꽃이요 환상의 꽃이다.

시골 처녀처럼 수수한 호박꽃은 요염한 장미처럼 별난 미색도. 백합 같은 유혹의 향도 없다 누렇게 익은 열매가 촌부의 둔부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이쯤 되니 <호박꽃도 꽃이냐>고 추녀의 대명사로 내몰려 애꿎은 여심만 박박 긁어 놓는다. 옴팡 눈이 대세인 요즘 짝퉁 장미가 소원인 여인들은 멀정한 코에 실리콘을 넣고 눈까풀을 찢고 턱을 깍는다. 하지만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랴. 외모가 능력이라고 믿는 작금의 씁쓸한 세태를 호박꽃에서 읽는다.

호박꽃을 닮은 새엄마는 넉넉한 잎 속에 몸을 숨긴 애호박처럼 속을 드러내려 애쓰지도 않았다. 단명인 아버지가 속도의 바퀴에 치여 비명횡사하자 할머니는 <서방 잡아먹은 년> 이라는 생트집으로 새엄마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마음의 생채기에도 피가 나고 진물이 나는 법 끄덩이라도 잡히는 날이면 새엄마는 뒤란에 있는 우물가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다.

그럴 때면 장독대 옆 담장에 핀 호박꽃이 말없이 그녀의 서러운 한숨을 들어 주고 있었다.

호박꽃은 그리움의 꽃이다. 그 속에는 서둘러 떠난 내 어머니가 숨어 계신다. 유년시절 어머니에게 호박꽃은 삶이고 세월이었다. 구수한 호박잎 쌈은 단골메뉴다. 여름 별식으로 호박선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입이 호사를 했다. 배가 허출해지면 맵찬 손으로 뚝닥 만들어주던 얼큰한 애호박 된장찌개며. 고소한 부침개. 호박풀떼기의 별미까지 그 부드러운 맛이 지금도 호박꽃에 묻어 있다. 꽃샘에 분탕치는 꿀벌 구금하여 흔들고. 밤이면 반딧불이 가두어 초롱 밝히던 꼬마도 어느새 은발이 성성하다. 별난 계모 슬하에 콩쥐로 자란 새엄마는 우리집에 와서도 아기를 갖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재혼도 어린 우리 남매를 보고서야 결정했다는 그 따스한 마음도 지금은 안다. 곱게 늙어가는 새엄마를 통해 호박꽃의 의미를 되새긴다. 결코 외모는 삶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사실. 사람도 청둥호박처럼 당당하게 늙어간다면 쇠락하는 시간에도 행복이 스며있고 늘그막이 진실 하나를 보탠다.

천대받는 꽃과는 달리 호박의 삶은 고귀하다.

늙어 약이되고 떡이 되는 게 호박이지 않는가. 황금빛 꽃에 황금빛 열매 어쩌면 호박에 얽힌 전설처럼 황금종을 만들려는 선인의 넋인지도 모르겠다. 잘 익은 청둥호박을 열어보라 담홍색 속살에 알알이 박힌 생명들 그것은 마치 금붙이 패물을 겹겹이 쟁여놓은 듯 경이롭다. 좌르르 쏟아지는 호박씨를 연주에 꿰면 단발머리 순이. 옥이가 걸고 다니던 유백색 비취 목걸이가 아니겠는가. 어디 금은보화가 흥부의 박속에만 있으랴.

하나님의 섭리 얼마나 지혜로우신가. 꽃이 화려하거나 좋은 향을 가지면 작은 열매를 주고 꽃이 보잘 것 없으면 크고 넉넉한 열매를 주셨다. 꽃도 열매도 훌륭하다면 금상첨화지만 하찮은 꽃에 열매마저 시원찮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래서일까 탐스런 오곡도 꽃은 별로다. 벼꽃이 그렇고 콩꽃이 그렇다. 사람들은 장미를 꽃의 여왕으로 입줄에 올리지만 그 열매는 얼마나 초라한가.

호박꽃의 멋은 누가 뭐래도 진솔함이다. 가식이 없는 꽃은 늘 훤칠한 목을 빼어 당당하게 하늘에 시선을 모은다. 슬픔과 기쁨 미움과 고마움도 한 심장에서 일색으로 피우는 꽃이 아니던가. 내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목록





이전글 2022.11.29 - 생각하는 나무 (가을이야기)
다음글 2022.12.13 - 생각하는 나무 (먹여주고 재워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