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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1 - 생각하는 나무 (한 송이 국화꽃을..)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4-23 18:06:34
  • 조회수 9

생각하는 나무 < 한 송이 국화꽃을.. .. > 전호림 산문

 

국화는 천생 가을 꽃이다. 가을이 제아무리 왔노라!” 소리쳐도 국화꽃이 피지 않으면 가을은 오지 않은 것이다. 6월의 꽃이 장미라면 가을꽃은 국화다.

국화 향이 은은하다고들 하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코를 가까이 대면 톡 쏠 정도로 향이 강하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상가나 영업집에 여럿 들여놓은 국화 향은 은은하게 퍼져 나와 사람 마음을 다독여 준다. 저들끼리 모였을 땐 제 독한 향으로 인하여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짓을 하지 않으려는 인간보다 나은 배려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저를 예뻐하는 인간에게 소박당하지 않으려고 방향을 자율규제하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대로 그런 해석을 붙여놓고선 한낱 식물일망정 삶의 자세를 배울데가 있다고 여긴다.

옛 시인들은 국화를 굽히지 않는 절개의 상징으로 보았다. 하얗게 서리를 맞고도 꼿꼿한 자태를 유지하는 모습에서 그와 같은 메타포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규보는 서리를 견디며 한해의 끝 무렵까지 피어 있는 국화를 중에서 오직 너만이 절개를 지킨다. 고 했다. 도연명도 된서리 맞으며 피는 국화꽃을 좋아했다.

추상(秋霜)을 이고 선 모습을 보고 인고의 꽃이라고 여긴 사람도 있었다. 서정주가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한 것도 그냥 평범한 누님이 아니라 국화에서 인고와 풍상을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내 나름의 해석이다. 국화꽃은 드러나게 화려하지는 않다. 오히려 수더분 해서 마치 마음 씀씀이 넉넉한 누님 같아 보인다. 그런 국화지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에 방점을 찍고 보면 인생의 간단치 않은 여정이 느껴진다.

아직 복사꽃 뺨을 한 누님이 마음을 떠나던 날 누님은 장독대 옆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던 노란 국화 송이를 손바닥으로 감싸듯 살짝 쥐고 흔들어선 제 코에 갔다 대고 흠흠 향기를 맡았다. 자박자박 사립문을 나서는 눈님의 얼굴에 결기가 서렸다. 그날 신작로까지 따라 나가겠다던 동생을 손사래 치며 기어이 돌려세우던 누님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그렇게 떠난 누님의 음신(音信)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다시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눈물 자국이 점점이 번진 부모님 전상서를 받아든 아버지는 내 이년 오기만 해라 달기 몽둥이를 그냥 ’ .. ..이라며 분을 사기지 못하셨다. 잣은 기침을 해 대던 아버지는 결국 딸의 귀가를 보지 못하고 고인이 되셨다.

그런 누님의 너무 늦은 귀가 어느새 여자 가 돼버린 딸을 끌어안고 늙은 어머니는 서럽게 울었다. 도회 생활이 고달팠으리라 남자도 겪어 봤을 테다. 사랑에 속고 세파에 치이며 갖은 풍상을 경험했을 것이다. 간밤에 대청마루 건넌방에서 나직히 들려오던 흐느낌 소리에 동생은 누나의 지난 시간을 헤아려 봤다.

그렇게 긴긴 방황을 거쳐 이제는 돌아와 성찰하듯 거울 앞에 앉은 누님 머리를 슬쩍 건드려 보고 손바닥으로 볼을 한번 쓰다듬어 본다. 복사꽃 붉은 뺨은 어디로 가고 살짝 기미도 꼈다. 삽살개가 마당을 가로질러 닭을 쫓고 장독대 옆 수챗가에서 뽀드득 뽀드득 쌀씻어 밥을 안치던 그 옛날의 달란했던 시간을 곱씹는 듯 눈님 얼굴에 회한이 스친다. 국화 향기 낭자하던 수챗가는 이제 수도꼭지 박힌 시멘트 개수대로 바뀌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노란 국화 아버지의 부재 목소리도. 덩치도 옛 모습을 더듬을 수 없는 동생. 새삼 시간의 낮섦을 확인하고 서러워 한다.

서리맞은 국화가 지고 나면 한동안 꽃을 보기 어렵다. 눈 속에서 매화가 필 때까지 긴 겨울을 기다려야 한다. 꽃을 보려는 사람의 마음도 긴 동면에 들어간다.

풍류객은 아니지만 아버지 세대가 즐겼드시 국화꽃 몇 잎 띄운 술 한 잔이 문득 생각난다. 황국(黃菊)긋긋하게 핀 감나무 아래 평상을 놓고 앉으면 금상천화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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