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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 생각하는 나무 (동심 그 티없이 맑은 세상)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4-23 18:05:38
  • 조회수 8

생각하는 나무 [ 동심 그 티없이 맑은 세상 ] 전호림 산문

 

우리 또래가 중학교에 진학할 당시는 입학시험을 쳤다. 200점 만점이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점수를 잘 받아야 명문 중학교 갈 수 있었다. 떨어져서 재수하는 학생도 꽤 많았다. 읍 수재지에 재수학원이 있을 리 없기에 낙방하면 6학년 후배와 같이 1년 더 공부했다. 이들을 7학년 3수 하면 8학년이라고 불렀다.

나는 미술과 음악으로 애를 먹었다. 미술 시간에 도화지나 크레용을 제대로 준비해 오는 학생은 한 학급 70명 중 절반을 겨우 넘었다. 가세가 가운 탓에 나도 그걸 장만할 형편이 안되는 아이에 속했다. 미술 시간 내내 다른 아이의 그림 그리기를 지켜보는 건 고역이었다. 심심해서 몸을 긁적이고 이곳저곳 한눈을 팔지만. 시간은 왜 그리도 더디게 가는지 그때 변소를 푸는지. 열어놓은 창문을 타고 농도 짙은 원초적 냄새가 넘어 들어왔다. 무료하고 답답한 내게.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수천 리 밖에 있는 듯 소외된 내게 그건 구원의 자극이었다. 지금도 해외 출장을 가면 문방구에 들러 질 좋은 도화지. 크레파스. 물감. 붓을 만지작거리곤 한다. 어린 마음에 그런 결핍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모른다.

음악 시간이 되면 덩치 큰 녀석 몇 명이 낑낑거리며 다른 교실의 풍금을 옮겨 왔다. 풍금 한 대 가지고 전교생이 돌려쓰다 보니. 우리 학교 풍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교실 저 교실로 옮겨 다니는 기구한 신세였다. 음악 시간엔 당최 음정과 박자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유교 문화가 엄격한 고장이라 어른들 앞에서 쫑알쫑알 말하면 버릇없는 아이 소리를 들었다. 하물면 노래를 어디서 부르랴. 그런 탓인지 내 가사는 선생님의 반주보다 항상 저만치 먼저 가거나 뒤처지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혼이 났다.

음악과 미술은 시험에 몇 문제 안 나오지만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책을 통째로 외우다시피 해야했다. 12색환. 명도. 백색 같은 것을 배운 기억이 난다. 6학년 음악 교과서에 실린 노래의 계명은 깡그리 외웠다. 시험 문제가 다음 마디에 들어갈 음표와 계명을 써넣으시오 하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동요는 마법의 성질이 있다. ’ 그건 아이를 위한 노래가 아니라 어른의 기초공사에 쓰이는 재료다. 어른이 되어서도 맑고 선한 마음을 갖고 바르게 살라는 경서(經書) 같은 것이다. 높은 건물을 올리려면 콘크리트가 있어야 한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와 모래를 주재료로 쓰지만 물이 없으면 그냥 가루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이성을 닦고 지식을 쌓아야 하지만 감성이란 접착제가 없으면 인격 형성이 어렵다. 동요를 들으면 날 선 이성이 순수하고 명료해 진다. 지금도 한잔하고 혼자 걸을 때면 양복 윗도리를 어깨에 걸치고 동요를 부른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솔바람이 걸쳐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걸쳐 놓고 도망갔어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그 시절은 머릿속에 잠 간 그리기만 해도 긴 복도에 낭랑하게 우려 퍼진다. 수십 년 전 급우들의 합창 소리를 선명하게 듣는다. 아이들의 마음은 흰 사발에 담긴 물과 같다. 붉은 물감을 푸느냐 파란 물감을 푸느냐에 따라 그릇 색이 달라진다. 그래서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 교육을 한 나라의 모든 일 중에서 으뜸으로 친다. 그에 따라 악다구니 쓰는 인간이나 염치를 알고 도리를 아는 인간으로 자라게 된다.

전교조 교사들이 교실에서 세월호 교육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문득 떠오른 단상이다. 인륜과 도덕에 어긋나지 않도록 가르침에 있어 교사 스스로 엄중히 경계하고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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