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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7 - 생각하는 나무 (수박화채가 있는 밤)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4-23 17:57:38
  • 조회수 10

생각하는 나무 수박화채가 있는 밤 전호림 산문 중에서

 

마당 한 편에 놓인 평상 위에 피난선처럼 식구들이 빼곡히 올라앉아 있다. 그 아래에 깔아 놓은 멍석에도 빈자리가 없다. 옆에서 모깃불이 타지만 바람이 없어선지 연기가 곧게 올라간다. 평상 위의 꼬맹이들은 여느 때와 달리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도 듣는 둥 마는 둥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물독에 담가 놓은 수박 탓이다. 아버지는 낮에 오일장을 다녀 오시면서 검은 줄무늬가 선명한 수박 한 통을 사와 물항아리에 넣어 두셨다. 어서 바깥마당 나가신 할아버지가 돌아오셔야 저 다디단 것을 먹을 텐데 .. .. ..

적막을 뚫고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서너 번 나는가 싶더니 이윽고 곰방대를 입에 문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삽짝으로 들어서신다.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수박을 꺼내 와서는 꼭지를 치고 칼을 넣는다. 쩍 소리가 나고 치아처럼 가지런한 씨앗이 드러난다. 붉은 속을 숟가락으로 파내서 큼지막한 양푼에 담는다. 그리곤 두레박으로 막 퍼 올린, 이가 시리도록 찬 우물물을 몇 사발 붓고 사카린도 한 봉지 털어 넣는다. 휘휘 저어 반투명 사카린 알갱이가 녹아 단물이 번지면 수박화채가 완성된다. 세상에 그런 환상적인 맛이 또 있을까. 입안은 달달하고 뱃속은 청량하다. 누워서 바라보는 별들조차 행복해 보인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삼촌 고모까지 여남은 되는 대식구라 썰어서 먹으면 한 덩어리론 어림도 없다. 물과 사카린을 넣고 그릇 수를 늘려야 하는 이유다. 깡 시골이라 얼음까지 넣을 형편은 안될 때 이야기다. 소고기 한 근에다 무와 대파를 많이 썰어 넣고 물을 한 솥 부어끓여야 대식구가 한 그릇씩 먹을 수 있었던 소고기 뭇국처럼 수박화채도 양을 늘려야 했다.

 

에어컨이니 선풍기니 인공의 것이 없던 그 옛날에도 열대야는 있었다. 할아버지는 태극부채로 느릿느릿 더위를 쫓았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활명수가 그려진 약국 부채로는 성에 안 찼던지 뒤 안을 들락거리며 등물을 쳤다. 물이 시린가? “ 으헛! 으헛! ” 하고 기겁하는 소리가 들린다. 두런두런 냇가에 멱 감으러 갔던 여인네들 돌아오는 소리가 담장 밖으로 들린다. 누나들과 젊은 아낙들이 무리를 지어 냇가로 가면 동내 형들이 몰래몰래 뒤를 밟았다. 그러고선 멀찍이 방천 둑 뒤에서 어둠속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알몸을 흠쳐보곤 했다.

 

밤이 이슥해졌다. 풀벌레도 한숨 쉬는지 조용하다. 아직 새마을 운동이 본격화되기 전이라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공간을 철커덕철커덕 고빼긴 밤 열차가 지나간다. 밖에서 바라보는 밤 열차의 길고 긴 차창은 판타지였다. 마법의 성으로 향하는 해리 포터의 열차쯤 될까. 불이 환하게 켜진 실내에 마주 앉은 사람들 저들은 대체 이 밤중에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어린 마음은 동경과 호기심으로 소용돌이친다.

열차는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임을 알려주는 마을의 공용시계 이기도 했다. 그 무렵 가장 사치;스러운 물품인 모기장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아이들 많은 집은 군데군데 기워서 이미 누더기가 돼있다. 안방 네 귀퉁이에 못을 박고 걸어서 제법 팽팽하게 당겨진 사각의 공간에 누우면 꼬맹이들은 황홀해진다. 이렇게 여름날은 갔다.

 

냉장고에 입을 즐겁게 할 먹거리가 꽉꽉 들어차 있고 버튼만 누르면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을 집집마다 들여놨지만 오늘날 우리의 여름은 과연 더 시원해졌을까? 할머니 할아버지의 옛이야기 대신 리모컨만 누르면 영상까지 곁들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우리 삶은 그때보다 더 재미있고 행복해졌을까?

금방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팠던 그 시절엔. 대한민국이 훗날 먹을 것이 너무 많아 고민하는 나라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못 먹어서 마른버짐 핀 얼굴의 주인공들이 불러온 배를 주체하지 못하는 비만의 시대를 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시절 박정희 공화당 정권에 맞서 야당의 정치구호는 배고파 못 살겠다. 죽기 전에 살길 찾자 였는데 그로부터 40여 년 세월이 흘러 먹을 게 넘쳐 나는 지금도 정치구호는 먹는 타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먹어야 행복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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