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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0 - 생각하는 나무 (그때 그 어스름 밥 먹어라)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4-23 17:56:49
  • 조회수 15

생각하는 나무 그때 그 어스름 밥 먹어라 전호림 산문

 

그 때쯤

밥 먹어라

부르던 엄마 목소리

( ... )

이제 먼 길을 걸어와 저물어가는 나이

그래도 가만히 불러보면 여전히

그 모습으로 달려오는

그때 그 저녁 (그때 그 저녁) 심정자 시집에서

 

술래잡기를 하는지 골목골목에서 튀밥처럼 아이들이 튀어나온다 말뚝박기하는 녀석들이 머리통을 앞사람 가랑이에 집어넣고 기차 고빼처럼 늘어섰다 땅거미가 내려 금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깨금발로 폴짝폴짝 뛰며 땅따먹기를 하는 아이 깡통보다 신발을 더 멀리 차 날리는 아이 어스름에 배가 고플 만도 하건만 한창 흥이 돋은 조무래기들은 바깥마당을 어지러이 뛰어다니며 왁자지껄한다.

그때쯤 호림아 밥 먹어라! 부르던 어머니 목소리 저녁밥 짓는 연기가 아직도 머리숱에 치맛자락에 목소리에 메케하게 묻어 있다. 손에는 불을 때다 그냥 들고 온 부지깽이가 들려 있다. “ 아이구. 꼴이 이게 뭐꼬? ” 먼지투성이가 된 검정 교복의 등짝이랑 바짓가랑이를 토닥토닥 털어주던 어머니의 손길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방금 전 일처럼 선명하고 살가운 감각으로 살아 있다.

배고픈데 어여 가자 작은 손을 따뜻이 감싸 쥔 그 손에 이끌려 아이들은 하나둘 골목으로 살아진다. 이윽고 읍내 극장의 커튼처럼 어둠이 내려오고 소란스럽던 무대는 적막 속에 묻힌다.

심정자 시인의 < 그때 그 저녁 >이란 시를 읽으며 주체 못 하는 그리움을 느낀다. 먹을 것 지천인 지금도 헛구역질하듯 배고픈 시절의 허기를 느끼는 것처럼 어머니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았건만 그 사랑에 대한 허기는 해가 갈수록 더하다.

그날 부지깽이를 들고 바깥마당을 찾아왔을 때처럼 흰 수건을 머리에 둘러쓰고 논두렁 밭두렁 걷던 모습 삐걱삐걱 물지게 지던 모습 새끼 낳은 어미소를 산모처럼 돌봐주던 모습 저녁 어스름에 밥 먹어라 부르던 목소리 행여 어머니의 환영이라도 환청이라도 만나려나 마음이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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