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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나무(사람으로 살아 간다는 것)-2018.09.11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8-10-04 14:31:40
  • 조회수 2107

생각하는 나무 < 사람으로 살아 간다는 것 > 김 수환 글

 

영국의 유명한 文筆(문필)가요 사상가인 버나드 쇼와 어느 정신박약자가 같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다가 풍랑을 만났다, 배는 파선하여 침몰하고 두 사람만이 바다에 던져졌는데 구명대는 1인용 하나뿐이었다. 이 때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이 살 수 있다면 관연 누가 살아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10초만 쉬었다 다음 문장을 읽으세요.)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당사자라면 누가 살아남아야 하겠습니까? ( 10초만 쉬었다 다음 문장을 읽으세요.)

여기서 판단은 버나드 쇼가 합니다.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대답이 어느 편이냐에 따라 가치관이 정 반대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답은 물론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버나드 쇼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과 정신박약자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버나드 쇼가 살아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정신박약자는 무용지물이지만 버나드 쇼는 더 많은 작품으로 인류 문명에 더 공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반대로 버나드 쇼가 스스로 희생 되고 정신박약자를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그럼으로써 보여준 인간애는 버나드 쇼의 과거, 현재의 작품, 미래에 쓸 그 어떤 작품보다도 인류에 공헌할 수 있다고 그 殺身成仁(살신성인)의 정신은 오늘의 이기적인 인간사회의 불멸의 빛이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 두 가치관 중에 당신은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저는 다음의 글을 읽고 의문을 던지며 지면에 추기경님의 글을 옮겨드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신앙인으로써 부끄러움 없는 선택으로 양심을 괴롭히지 않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버나드 쇼가 살아야 한다는 견해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일종의 엘리트 사회관입니다. 그러나 약자의 생명을 짓밟고 살아난 버나드 쇼의 인생관은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그가 자신이 살기 위해 정신박약자를 밀어내고 구명대를 차지한다면 그의 인품이 무엇입니까? 그가 그동안 글로서 밝힌 인간애, 人本主義(인본주의) 같은 것은 무슨 의미를 지닙니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약한 자. 사회발전에 구체적으로 이바지할 수 없는 쓸모 없는 존재는 도태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회는 곧 약자는 도태되어 죽고 강자만 살아 남는 치열한 경쟁사회 즉 弱肉强食(약육강식)의 극도로 利己主義(이기주의)적인 사회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화가 추구하는 문명이란 物質文明(물질문명)입니다.

인간을 짓밟고 인권을 유린해도 관계없는 唯物論(유물론)적 문명입니다. 인간다움이 없습니다. 탁월한 頭腦(두뇌). 知性(지성)은 있어도 인간다운 정신은 없습니다. 性愛(성애)는 있어도 인간다운 사랑은 없습니다. 결국 ()이 타락한 사회 마음이 메마른 사회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인간생명은 세상의 모든 가치 중에서 가장 존귀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모든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 참으로 인간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호크 하이먼의 말대로 오늘의 우리 사회와 세계는 분명히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인간적인 인간이 되느냐, 아니면 동물적 인간이 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인간을 희생시키고 인류를 파멸로 이끌 위험이 절대적으로 큰 물질적 발전을 계속 찾을 것이냐 아니면 물질적 발전이 둔화되고 늦어질 지라도 진정 인간을 위한 인간적 발전의 길을 찾을 것이냐 하는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그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오늘의 물음에 당신은 무어라고 답하시겠습니까?

 

信仰(신앙)을 가진 宗敎人(종교인)으로서 社會的(사회적) 觀點(관점)에서 본다면 自身(자신)犧牲(희생)하여 他人(타인)安寧(안녕)圖謨(도모)하는 것이 價値(가치)있는 삶의 行爲(행위)라고 判斷(판단)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이 무엇인지 아세요? 친구를 위해 나의 생명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참 많이 힘든 論理(논리)를 접했습니다. ()()選擇(선택)直面(직면)哲學的(철학적) 信仰(신앙)의 소리를 듣기 ()하는 쉽게 內面(내면)을 들어 낼 수 없는 課題(과제)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이글을 옮기는데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여러분의 知的(지적) 水準(수준)信仰的(신앙적) 知慧(지혜)意志(의지)하고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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