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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나무(바람의 언덕)-2016.04.26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6-05-09 13:17:18
  • 조회수 3357

생각하는 나무 바람의 언덕 이 현수 지음

 

바람의 언덕과 도다리 쑥국의 차이를 아는가. 지심도와 멍게 비빕밥의 간격을 아는가.

일반 독자들은 모르지만 꾼들은 안다. 바람의 언덕은 웬만큼 써도 잘 쓴 것처럼 보이고 도다리 쑥국은 여간 잘 써도 잘쓴 것처럼 보이질 않는다. “ 그건 소재 때문이다. ”

 

손맛은 노력도 노력이지만 미각이 발달한 사람만이 낼 수 있다. 지심도를 걷는 동안 그토록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이 지천이었는데도 내 눈엔 나물들만 보였다. 저게 먹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혹은 나물이면 쌈으로 먹을 거냐 데쳐서 먹을 것이냐. 온갖 요리 방법을 동원하느라 머릿속이 바빴다.

 

멍게 비빕밥은 거제 특비라고 해서 아주 작정하고 먹어 봤다. 우선 손을 잘 닦고 물로 혀를 가셔 맛보는 자로서의 기본자세를 갖추고 엄숙하게 먹었다. 제철의 음식이어서 오죽 맛있을까. 나름 기대도 되었다.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노란 멍게를 반 숙성시킨 다음에 살짝 얼려 김가루와 깨소금 참기름이 노란 수수가 다문다문 섞인 밥에 얹혀 나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첫눈에도 군침이 흘렀다. 비빔밥은 원래 싹싹비비는 것이 아니다. 식감이 살아 있게끔. 멍게를 밥과 살살 버무려 비벼야 한다. 젓가락으로 살살 비빈 멍게 비빔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더니 첫 맛은 미끌했고, 뒷맛은, 쌉쌀하게 혀에 감겼다.

거제도에서 홀딱 반한 것은 다름 아닌 도다리 쑥국이다. 어떻게 도다리에 쑥을 넣을 생각을 했을까, 우리나라에서 나는 쑥은 정말로 좋은 허브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것을 늘 잊고 산다. 곁에 늘 있고 질리도록 봐서 일까, 마치 본처의 수고를 잊기로 맹세한 무정한 남편들 처럼,

어디 쑥뿐이랴, 산과 들에서 나는 취며, 고들빼기, 미나리, 쑥갓 등 각각의 독특한 향은 서양의 어느 허브보다도 뛰어나다. 톡 쏘는 쑥의 진한 향내를 방해 할 세라 냄새가 날 동 말동 된장을 연하게 밑간으로 풀어 한소끔 끓인 도다리 쑥국은 단연 일품이다. 언뜻 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도다리와 쑥의 조합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오래 같이 산 부부들처럼 서로 밀어내질 않았다.

 

센 불의 화기에 서로의 결은 한풀 삭았으되, 그 맛과 향은 일정하게 잘 유지하고 있었다. 입속으로 한 입 떠 넣었을 때 탱글탱글 살아 있는 도다리의 살이 혀 위로 포슬포슬하게 구르고 전혀 예상치 않았던 쑥의 강한 향이 혀뿌리에 지그시 감기는 맛은 내 심장에 오래오래 남는 득 싶다. 그리하여 거제도의 도다리 쑥국은 내게는 일종의 치유 음식으로 기억 될 것이다. 코 아래 진상이라고 했던가? 남의 환신을 사려면 먹이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라는 옛말도 있다.

왜냐하면 미각은 인간이 느끼는 감각 중 심장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고 한다. 더욱이 맛과 향이 톡특해서 아무리 오랜 세월동안 아프게 맺힌 마음도 이 도다리 쑥국을 같이 먹으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가슴 속이 확 뚫릴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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