菜根談(채근담)
洪自誠(홍자성) 지음
명예를 독점하지 말고 부끄러움을 남에게 넘기지 말라
完名美節(완명미절)은 不宜獨任(불의독임)이니 不些與人(불사여인)이며
可以遠害全身(가이원해신)이요.
완전한 명예와 아름다운 절개는 혼자만 차지하지 말라 조금은 남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짐짓 害(해)를 멀리하고 몸을 온전히 할 일이다.
辱行汚名(욕행오명)은 不宜全推(불의전추)이니 引些歸己(인사귀기)면
可以韜光養德(가이도광양덕)이다.
욕된 행실이나 더러운 이름은 절대로 남에게 미루지 말라, 잘못을 조금은 자기에게 돌림으로써 빛을 지니고 덕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完名(완명)-완벽한 명예. 美節(미절)-아름다운 절개. 獨任(독임)-독점. 推(추)-밀다.
남에게 떠넘기다. 韜光(도광)-빛을 감추다. 재능을 감추다. 些(사)- 적게.
공적과 명예는 결코 혼자 독점해서는 안 된다. 남에게도 어느 정도 할양함으로써 신망과 질투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 또 실패와 오명을 모두 남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자신도 어느 정도는 그 책임을 짐으로써 겸손을 기르고 인격을 연마 시켜 나가야 한다.
일이 잘 풀려 나갈 때 진실 된 마음으로 ‘ 모두 여러분의 덕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또 남이 실패하여 공경에 처했을 때 ‘ 운이 나빴던 거야 나도 성심껏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며 진심으로 동정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주변에는 자연히 힘을 빌려주고 지혜를 모아주는 협력자들이 찾아들게 마련이다.
智識(지식)은 안보여도 敎養(교양)은 보인다.
김주연 隨想錄(수상록)에 나오는 글입니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英語(영어) 單語(단어)가 몇 개나 들어 있는지 數學(수학)은 어디까지 理解(이해)하고 있는지 하는 것은 도대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敎養(교양)이 있는지 없는지는 금방보입니다. 敎養(교양)이란 該博(해박)한 知的(지적) 앎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共同體意識(공동체의식)입니다. 自身(자신)이 單獨者(단독자)가 아닌 社會的(사회적) 動物(동물)이라는 意識(의식)이 透徹(투철)할 때 敎養(교양) 있는 삶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敎養(교양)은 한 瞬間(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一種(일종)의 生活習慣(생활습관)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쌓여온 生活(생활)이 習慣化(습관화)될 때 敎養(교양)이 形成(형성)되는 것입니다.
늙은 나무는 接(접)이 되지 않습니다. 接(접)을 하려면 2-3年生(년생) 된 柔軟(유연)한 苗木(묘목)이라야 可能(가능)합니다. 古木(고목)나무는 굳어져 휘지도 않습니다. 휘려고 하면 부러져 버립니다. 庭園師(정원사)의 意圖(의도)대로 苗木(묘목)을 만들려면 햇가지로 해야지 오래 묵은 가지로는 不可能(불가능) 합니다.
幼年期(유년기)와 靑少年期(청소년기)는 가르치는 敎育(교육)과 보여주는 敎育(교육)을 통하여 敎養人(교양인)의 素養(소양)을 기르는 時期(시기)라면 靑(청).長年期(장년기)는 그야 말로 敎養人(교양인)으로서 社會的(사회적)인 役割(역할)을 勘當(감당)해야 하는 時期(시기)입니다.
그런대도 오늘날 젊은 親舊(친구)들은 敎養(교양)과 親分(친분)을 쌓으려 하지 않고 知的欲求(지적욕구)에는 强(강)한 意志(의지)를 보이며 共同體的(공동체적) 삶에 對(대)한 責任意識(책임의식)은 弱化(약화)되어 瀕死常態(빈사상태)의 社會化(사회화) 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