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나무 < 두 아들의 죽음 > 전효림 산문
30대와 50대 두 남성이 지난해 2월 각각 경기도 구리와 대구에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두 사람이 다 어머니에 얽힌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35세의 남자는 부모가 이혼한 뒤 중학교 때 집을 나가 객지를 돌아 다니다 그날 어머니 묘소 옆 나무에 목을 맸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유서를 토대로 경찰은 그리 추정했다. 아직 알 속에서 부활하지도 않은 채 사회에 나갔으니 어찌 평범한 삶이 가능했겠는가? 한 세대 전과 달리 지금은 명경알처럼 빈틈없어진 사회가 아닌가? 어릴 땐 공부도 곧잘 하고 부모한테도 귀여움을 받는 또랑또랑한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의지해 한창 꿈을 키워 나갈 나이에 부모의 이혼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마음을 추스리지 못해 집을 나갔지만 세상이 그리 만만했을리 없다. 건설현장을 전전했다니 그간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됐을까. 엄마는 왜 나를 낳아선 이렇게 버렸을까? 수많은 날을 원망과 회한의 눈물로 보냈을 법 하다. 그러나 그날 소주 한 병 사서 어머니 무덤에 뿌리고 저도 한잔 마시며 하직을 고하는 그의 가슴속에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없었을 것이다.
“ 아이고 불쌍한 우리 엄니! ”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한 어머니. 자식 된 도리로 한번 모셔보지도 못하고 보낸 어머니에 대한 회한이 더 컸으리라.
“ 어머니! 과거 일일랑 다 덮어버리고 악착같이 돈 벌어 어머니랑 오순도순 한번 살아보겠습니다.
이렇게 다짐했건만 어머니는 기다려 주지 않고 먼저 세상을 떠났는지 모른다. 그 소식은 그의 삶에서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머니 무덤 옆에서.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니 계시는 곳으로 가겠다고 결심한 데서 그의 심정이 절절히 읽힌다. 누런 뗏장에 얼굴을 비비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울고불고 몸부림쳤을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니 가슴이 많이 아프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같은 날 대구에서 쉰셋의 남자가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한 죄책감에서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는 사법고시에 잇따라 실패한 뒤 쉰이 넘도록 장가도 못가고 별다른 직업도 없이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린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죽어도 조상 뵐 면목이 없다며 장가들 것을 보채는 어머니를 타박했을 것이다. 며느리 손에 따뜻한 밥 한번 얻어먹지도 못하고 평생 늙은 아들의 밥을 짓느라 고생한 어머니. 눈물과 한숨 속에 살다간 어머니의 영정을 지키던 아들은 이튿날 자신도 몸을 던져 어머니 뒤를 따라 저승에서나마 착한 아들. 좋은 아들로 살기를 빈다.
어미에게는 어떤 자식도 다 잘났다. 내 아들이 비록 운이 닿지 않아 시험을 놓쳤지만 그 후에도 왜 삶이 풀리지 않는지 80대 노모는 애간장을 녹였을 것이다. 일가 친척의 눈총은 또 어땠을까? 세상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착한 색시 얻어서 손주 낳고 오순도순 사는 아들을 당신도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남자는 전쟁터에 나가 싸움을 하고 세상을 상대로 고함을 지르지만 결국은 한 어머니의 아들이다. 어머니에게 뽐내고 싶고 어머니에게 사랑 받고 싶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 앞에선 어린아이요 어리광쟁이다.
” 나 정말 우리 엄마만 아니었으면 .. ...
남자들이 객기를 부릴 때도 어떤 일을 참을 때도 “ 어머니가 ” 있다. 어머니는 아들을 지키는 주술이고 부적이다. 도덕적 잣대로 버팀목이며 엎어져도 스스로 추스르고 일어설수 있게 하는 정신의 지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