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나무 채근담 홍자성 지음
선인에게는 관대한 것이 좋고 악인에게는 엄한 것이 좋다
處治世(처치세)엔 宜方(의방)하고 處亂世(처난세)엔 宜圓하며 處叔季之世(처숙계지세)엔 當方圓並用(당방원병용)이라.
待善人(대선인)엔 宜寬(의관)하고 待惡人(대악인)엔 宜嚴(의엄)하며 待庸衆之人(대용중지인)엔 當寬嚴互存(당관엄호존)이라.
태평한 세상을 맞아서는 마땅히 방정하게 살 것이고 난세에 처해서는 마땅히 원만하게 할 것이며 말세를 당해서는 마땅히 방정과 원만을 아울러 써야할 것이다.
선인을 대함에는 의당 관대해야 하고 악인을 대함에는 의당 엄격해야 하며 평범한 사람을 대함에는 관대와 엄격을 아울러 지녀야할 것이다.
善人(선인)이란 自己(자기)의 罪科(죄과)를 記憶(기억)하고 自己(자기)의 착한 일, 착한 行爲(행위)를 妄覺(망각)하는 사람을 말하고 惡人(악인)이란 이와는 反對(반대)로 自己(자기)의 착한 일, 착한 行爲(행위)를 記憶(기억)하고 罪科(죄과)를 妄覺(망각)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惡(악)은 처음엔 달콤하고 나중엔 쓰며, 善(선)은 처음엔 쓰고 나중엔 달다.
나쁜 일을 하기란 얼마나 쉽고 卑劣(비열)한 일이며, 아무 危險(위험)도 없는 곳에서 착한 일을 하기란 얼마나 속된 일인가, 그러나 危險(위험)이 있는 곳에서 착한 일을 하기는 道德(도덕)君子(군자)가 마땅히 할 일이다.
“ 여울물 소리 ” 黃晳暎(황석영) 長篇小說(장편소설)
황석영선생의 저서 여울물소리 중 이야기 한 편을 소개 해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황석역 작가는 소리꾼 또는 이야기 꾼입니다. 그의 작품에 담긴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가슴에 와 닫는 공감을 담고 있으며 책을 읽고 있다 보면 함께 글속으로 빨려들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 속의 인물과 한패가 됩니다.
황석영 작가는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 났습니다.
1950년 초등학교에 입학 했으나 6.25 전쟁으로 피난지를 전전했고 1962년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단편 “ 입석부근 ”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면서 등단했습니다.
진보적 민족문화운동의 추진작가로서 활동하며 도교와 베이찡을 거쳐 평양을 방문 이로 인해 반공법 위반으로 7년형을 받고 옥살이를 하기도 했던 작가입니다.
서문 밖 삼십 리쯤 되는 곳에 한 퇴리가 있었으니 성명은 최만춘이라 하며, 아내 조씨와 더불어 이십여 년을 같이 살아왔건만 슬하에는 일점혈육이 없더니 최만춘 내외는 이로 말미암아 근심을 마지아니하여 명산대찰에 기도와 불공도 하고 곤궁한 사람을 살려주는 적선도 하여 한편으로는 의약을 써 몸을 보하기도 하여 그러구러 하는 사이에 신명이 감응하였든지 그러하지 아니하면 정성이 지극하였든지 부부가 한 가지로 신기한 꿈을 꾸었던이 이내 부인에게 태기가 있더라 .
열 달이 차매 하루는 조씨 부인이 신기가 불편함으로 자리에 누어 있더니 갑짝이 그윽한 향내가 방안에 감돌며 문득 한 옥녀를 낳더라 만춘의 기뻐 날뛰는 양은 이루 말할 수도 없거니와 다못 딸아이를 낳게 됨을 섭섭히 생각하고 내외가 서로 위로하며 재미롭게 키워내더라 딸아의 이름을 콩쥐라고 지어 손바닥에 보옥 같이 애지중지 사랑하여 남의 귀공자를 부러워하지 아니하며 불면 날까 쥐면 꺼질까 하고 어서 바삐 자라기를 주야로 바라더라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요 그 모친의 천명이 그만이든지 조물이 시기함인지 콩쥐가 태어난지 겨우 백일 만에 조씨 부인이 세상을 영영 하직한바 되니 최만춘은 뜻하지 않게 중년에 홀아비 신세가 되어버리더라, 만춘은 몸이 외롭고 쓸쓸할 적이면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어린 콩쥐를 안고 다니면서 동리 아낙네들의 젖을 얻어 먹이니 하루이틀도 아니요 일년 이년을 그리하였으니 그 고생이 었더 하였으리요 철모르는 콩쥐가 젖 찾는 소리는 죽은 어미의 혼이 가령 있을진대 눈물이 변하여 비라도 되었으리라
최씨가 과부 배씨와 재혼하고 데리고 온 딸 팥쥐와 함께 모녀가 콩쥐를 부려 먹고 구박하는 대목에는 모두들 한 숨을 쉬거나 저런 못쓸 년! 어허 저런 불여우 같은 것들이 있나 ?
위 대목은 콩쥐팥쥐이야기입니다
신이가 장날에 갔다가 이야기책을 사가지고 와 사랑채에서 부엌댁과 하녀와 사랑채의 마당쇠까지 모와 놓고 신이가 책을 읽어주는 장면입니다.
報恩不忘施惠無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