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나무 “ 생명의 봄이 철거되던 날” 글 고진하 목사
야산 등성이마다 연분홍 산벚꽃이 듬성듬성 피어 장관을 이루던 4월 하순 아침, 느닷없이 까치 우짖는 소리가 요란해 대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집 앞엔 작은 텃밭이 있고, 텃밭 옆으로 큰 전봇대가 서 있는데, 전봇대 위엔 까치집이 있었다. 그런데 전봇대 밑에 전기안전공사에서 나온 붉은 사다리차가 사다리를 뽑아 올린 후 한 인부가 쇠막대기로 까치집을 허물고 있었다. 나는 사다리차 운전사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아니, 멀쩡한 까치집을 왜 부수는 거죠?”
마을에서 신고가 들어와 부득이 까치집을 철거하게 된 것이라고 그는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까치집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먼저 둥지 외곽을 둥글게 감쌌던 수백 개의 나뭇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외부에선 보이지 않던 작은 방석만 한 깃털 이불도 툭 떨어졌다. 까치집을 그렇게 철거한 후 인부들은 차를 타고 획 떠나버렸다.
겨우내 공들여 지은 보금자리를 잃은 까치 한 쌍은 계속 전봇대 주위를 선회하며 까악 까악 깍…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청천 하늘에 이런 날벼락이…? 까치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전봇대 밑에는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지만, 까치들에겐 봄날이 사라져버린 것. 어쩌면 까치들은 곧 둥지에 알을 낳고 알을 품어 새끼를 까려고 했을 텐데, 그 생명의 봄이 철거되어 버린 것.
전봇대 밑이 바로 텃밭이라 나는 사방 흩어져 있는 둥지의 건축 재료, 나뭇가지를 모아 종이 상자에 담고, 깃털 이불도 주워 집안으로 들여왔다. 깃털 이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숱한 새들의 깃털을 물어다 마른 나뭇잎과 섞어 짠 것이었다. 까치의 지극한 모성이 느껴져 마음이 아렸다.
나는 텃밭을 일궈야 하기에 흩어진 수백 개의 나뭇가지를 상자에 담아 왔는데, 며칠 동안 그 나뭇가지들을 들여다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뭇가지의 종류도 다양했다. 은행나무, 소나무, 밤나무, 뽕나무, 산수유나무, 보리수나무, 자작나무, 산사나무 등등. 마른 나뭇가지라 내가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까치도 그렇지만 모든 새들이 자연의 소재로 둥지를 지을 때, 그냥 아무 나뭇가지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해충의 침입을 막거나 어린 새들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신선하고 강력한 여러 종류의 약초로 둥지를 짓는다는 것. 그러니까 잡식성인 까치는 때때로 부패한 먹이와도 접촉하기 때문에 어린 새들의 감염을 막기 위해 항(抗)미생물 효과가 강한 식물들로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것. 이런 식물을 이용하면 미생물의 증식과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스티븐 해로더 뷰너,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 참조)
동물들이 식물의 도움을 받아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는 건 친구 양봉가에도 들은 적이 있다. 꿀벌의 생존에 필수적인 밀랍은 여러 나무에서 나오는 고무질의 진액을 채취해서 만드는데, 벌들은 이 밀랍을 벌통 내부에 발라서 온갖 세균으로부터의 감염을 막는다고 한다. 따라서 나무들의 도움이 없으면 밀랍을 만들 수 없으니, 나무들이 없으면 애당초 양봉은 불가능한 것이다.
평소 동물들의 이런 신비로운 의료지혜를 주목하고 사는 나는 집안에 기르는 가축들이 병들거나 식구들이 아파도 되도록 병원을 찾아가지 않고 내 주변의 식물에서 약을 구하곤 했다.
개들의 경우 배탈이 나면 마당에 난 바랭이 풀 같은 것을 뜯어먹고 토하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멀쩡해졌다. 고양이들 역시 무언가 먹이를 잘못 먹어서 탈이 나면 스스로 괭이밥이나 수영 같은 풀을 뜯어 먹고 먹은 것을 즉시 토해내 버렸다. 그렇게 토하고 나면 병이 멎었다. 사람도 배탈이 나면 이토지사(以吐止瀉), 즉 토하게 하여 설사를 멎게 하는 치료법을 쓰는데, 동물들의 의료지혜를 통해 배웠으리라.
까치집이 철거된 후 열흘쯤 지났을까. 아침에 대문을 열고 전봇대를 올려다보니, 까치 한 쌍이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며 다시 둥지를 짓고 있었다. 사람들이 철거한 생명의 보금자리를 다시 만들고 있다.
누군가 이런 말 했다. <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