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나무 < 아버지의 수난 시대 > 전호림 산문
KT 들어 올 때 안 됐냐? (고3 아들)
SK가 저녁 먹고 오라고 했대. 밥하기 귀찮다고. (고1 딸)
아들과 딸이 주고받는 말을 안방에서 우연히 듣게 된 엄마는 딸을 구슬려 KT가 꼴통을 뜻하는 걸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 SK는 엄마 이름 머리글자를 앞두로 바꿔놓은 것이었다. 애들은 휴대폰에도 아빠와 엄마를 KT와 SK로 입력해 놓고 있었다. 쉰둘인 K씨는 늦게 낳은 자식을 무척 예뻐했지만. 귀가 시간이 절대 12시를 넘지 못하게 했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일은 더더욱 엄금했다. K씨 가족은 맞벌이다. 입시공부다. 다들 바빠서 한자리에 모이기가 어려웠다. 어쩌다 마주 앉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성적표로 야단을 치는 때가 많았다. 그래도 그건 아비로서 마땅히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K씨는 ‘ 나 자신도 어릴 때 아버지를 꼰대 ’라고 부르긴 했지만 거기엔 한 가닥 어른에 대한 존경의 염(念)이 들어 있었다. 며 자식한테 꼴통 소리 들으니 참담하다. 고 털어놨다.
아빠는 이런 중대한 시기에 우리를 팽개치면 어떻게 하겠는가? 졸업할 때까진 버텨줘야지. 취직하려면 스펙 더 만들어야 한단 말이야.
지난해 중견기업 상무를 끝으로 퇴직한 L씨는 대학 4학년 딸의 푸념을 듣고 얼마나 야속하고 서글픈지 자꾸만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근 30년을 제 삶은 없고 오로지 처자식을 위해 살았으니 가족들이 풀코스 마라톤 주자처럼 자신을 맞아 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였고 다들 제 생각뿐이었다.
돈 쓸대는 여전한데 소득이 딱 끊어지니 우선 가정이 돌아가지 않는다. 아내의 짜증이 조금씩 늘면서 부부 사이도 냉랭해졌다. 제대하고 복학한 아들은 그나마 아버지 처지를 좀 이해하는 듯 했지만. 처와 딸은 발에 차이는 애물단지 취급을 했다.
내가 저 애를 얼마나 예뻐했든가! 그리고 집사람에게는 비록 내가 자잘한 애정 표시는 못 했지만 또 얼마나 의지를 했던가.
아내 한테 받은 하루 용돈 1만 원으로는 정말 북한산 밖에는 갈 데가 없었다. 어느 날 산행 중 비를 만나 되돌아 오던 그는 문득 갈 데가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 어떻하다? ’ 이 대낮에 집에는 못 가고 .. ...
그렇게 두리번 거리던 그의 눈에 담벼락 아래 버려져 있는 비를 맞는 고철 덩어리가 들어왔다. 거기서 그는 평생 돈 버는 기계로 살다. 버려진 자신의 모습을 봤다. 그때 문득 ‘ 아 사람들이 이래서 자살을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며 속을 비워 간다.> <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은 빈 소주 병이었다. >
공광규 시인의 < 소주병 > 이라는 시詩다. 가족에게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조금씩 조금씩 덜어 내주고 마침내는 빈 ᄁᅠᆸ데기가 되는 아버지. 자식들 앞에서 아내 앞에서 세상 따윈 조금도 무섭지 않다고 허세를 부리고 어험 어험 헛기침을 하며 짐짓 가장의 위험을 보이는 아버지 그 존재의 무거움과 서글픔. 그리고 마침내 허망함을 알고 나서야 오십줄의 아비들은 깨닫는다. 뽕나무 회초리로, 때론 지게 작대기로 혼을 내시던 그 옛날 제 아버지의 힘들었을 삶을.
지금 50~60줄 아버지들의 역사적 사명은 산업전사였다.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오는 생활에 처자식과 알콩달콩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한들 그 길이가 얼마나 될 것이며, 새록새록 정을 쌓았다고 한들 그 깊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세상은 그런 사정을 싹둑 자른 채 가정을 팽개친 중 죄인으로 아버지를 추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