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나무 “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 ” 글쓴이 남궁 인 응급실 의사
어둠이 내려앉은 밤 도시 뒷골목에서 중년의 남성이 쓰러졌다.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마침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행인에게 발견될 때까지 그는 줄곧 혼자 쓰러져 있었다. 응급실로 실려 온 그는 심정지 상태였다. 외상의 흔적도 없었고 심장의 움직임도 없었다. 심폐소생술에도 심전도는 평행선을 그렸다. 돌아오기 어려운 심정지였다. 치명적이지만 여기서는 흔한 일이었다.
주머니를 뒤져 그의 휴대폰을 찾아 통화목록을 열었다. 가족에게 소식을 전해야 했다. 마침 아들로 저장된 번호가 최근 통화에 찍혀 있었다. 연결되지 않았던 마지막 통화는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환자가 전화를 건 뒤 어느 시점에 쓰러져 행인이 발견해 심폐소생술과 함께 실려 온 일이 모두 한 시간 안에 일어난 것이다.
나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조금 전 환자가 자신의 의지로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는 그는 휴대폰을 누르기는커녕 보고 듣는 일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가끔 환자가 직전까지 멀정히 사고(思考)하고 행동하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문득 전화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A님의 아드님이세요?” “ 네 맞는데요 ” 당혹스러운 목소리였다. 아버지로부터 걸려 온 전화의 목소리가 아버지가 아니었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필연적으로 누군가 사실을 알려 주어야 했다.
“ 저는 응급실 의사입니다. 아버지가 심정지로 쓰러져 심폐소생술 중입니다. 빨리 병원으로 와 주세요. ” “ 뭐라고요? ” .... ...... “ 알겠습니다.”
이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남자가 응급실로 들어왔다. 그가 보호자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제가 전화를 건 의사입니다. ” “ 최선을 다해 처치를 하고 있지만 곧 돌아 가실 것 같습니다.” 그는 비명과 함께 아버지가 있는 소생실 쪽으로 몸을 부딪혀 주저 앉았다. 나는 그를 부축해서 소생실로 들어갔다. 환자의 심박은 계속 평행선이었다. 나는 아들을 불렀다. “ 심장이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급성 심경색이었을 것 같습니다.” “ 이제 막 운명하셨습니다 ”
아들이 묻는다 “ 저~ 한 시간 전에 전화를 건 것도 선생님인가요.” “ 아닙니다. ” “ 그러면 그 때는 온전한 아버지였나요? 아니면 도움을 요청하거나 마지막으로 말씀을 남기는 전화였을까요?” “ 심정지는 불시에 찾아옵니다. 심장이 멈춘 뒤에는 전화를 걸지 못하셨을 겁니다.” “ 으 ..”
아들은 잠시 얼굴을 파묻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쏟아내듯 말했다.
“ 아버지는 다정하셨어요 약주를 드시면 전화를 거는 습관이 있으셨지요. 방금 귀가하실 시간이었는데 솔직히 전화기에서 아버지 이름을 보았어요. 그런데 일부러 안 받았어요. 약주 드시고 전화하시는 거라 생각했어요. 중요한 말씀이 아니려니 해서요 ” “ 그리고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던 터라 아버지 전화를 무시했지요” 그러고 한 시간쯤 지나 전화가 와 받으니 선생님이었어요. “ 아~ 제가 그때 전화를 받았으면 아버지와 통화를 했겠지요. 그랬더라면 아버지는 돌아가지 않으실 수도 있었겠지요 ” “선생님 제가 전화를 받았으면 달라졌을까요?” “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 “ 제 생각에는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아들 생각을 하셨다는 겁니다.” “ 전화를 받고 안 받고가 아버님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 “ 마지막까지 아들을 기억하고 아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그래도 그걸 제게 전하려고 하셨는데 제가 외면한 거잖아요. 그걸 제게 전하지 못하시고 지금 돌아가셨잖아요. 그런데 제가 안 받은 거잖아요. ”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끌어안고 우느라 겨를이 없어 보였다. 소생실 자동문을 빠져나오자 커다란 곡소리가 따라 나왔다.
죽음은 어는 순간 불시착에 오고 우리는 막을 수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 간에도 사랑을 가슴에 묻어두고 언젠가 전해주려고 생각한다면 이것 역시 우리가 범하는 착오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마지막을 모른다.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 전에 운명을 달리한 가수분을 두고 인생의 허무함을 메스컴을 통해 드려다 보았다. 누구도 언제까지 자신이 숨을 쉴 수 있다고 자만하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그는 오만에 침몰된 사람일 거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 운명은 피할 수 없어 원천적으로 삶은 슬프고 치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