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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2 - 생각하는 나무 (어느 50대 부부의 별거 記)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4-23 18:09:40
  • 조회수 141

생각하는 나무 < 어느 50대 부부의 별거 > 전호림 산문 중

 

해외 출장 때를 빼고는 부인과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는 L. 대기업을 퇴직하고 지난 6월 지방 중소기업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총각 생활로 돌아갔다. 그때만 해도 ~해방이다. ”며 쾌재를 불렀다. 25년을 같이 살면서 별스레 애틋한 마음도 살가운 정도 느끼지 못했던 그다. 결혼했으니 한 집에서 산 것뿐이라고 할까?

부인은 회사 핑계 대며 토. 일요일까지 나가는 남편을 타박했고 남편은 자신이 가두리 양식장 물고기 신세라며 투덜댔다. 의무에 충실한 부부 생활. 무덤덤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따로 산 지 5개월 만에 새록새록 돋아나는 부부의 정에 둘은 놀라워하고 있었다.

홀로 내려간 그는 도심에 방 한 칸짜리 오피스텔 하나를 얻었다. 손수 밥을 지어 먹고 빨래도 하면서 다시 대학 생활을 즐겼다. 서울의 스트레스 받는 술자리와 달리 지방에서 새로 사귄 사람들과 술도 맛있게 마신다. 그런데 계절 탓인가? 10월 어느 늦은 밤의 일이었다. 인기척 없는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서는데 싸늘한 공기가 몸을 휩싸았다. 순간 확 외로움이 끼쳐왔다. 컴컴한 방에서 우두커니 선 채 생각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건가?

따신 국물 없이 김치와 달걀 프라이만으로 저녁밥을 먹던 날엔 독고노인 인냥 서글프고 초라했다. 불현듯 전쟁 치르듯 늘 부산한 서울집의 아침 출근 모습이 그리워졌다.

 

그즈음 서울 부인의 마음도 착잡해졌다. 남편의 부재는 반려견과의 응답 없는 대화 시간을 늘렸다. 처음엔 친구들과 어울려 커피도 마시고 등산도 다니면서 남편에게서 해방된 시간을 즐겼다. 폐경을 겪은 터라 남편 없는 밤이 그다지 아쉽지도 않았다. 그런 어느 날 해 질 무렵. 큰 침대에 덩그러니 홀로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창밖 언덕빼기 은행나무는 잎을 거의 다 떨구고 쓸쓸히 서 있었다. “ 우리가 지금 뭐 하는 거야? ” 결혼 후 처음으로 서럽고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은 11월 들어 주중 한두 번씩 KTX로 내려 간다. 좁은 방에서 남편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단칸방 신혼생활처럼 달콤하단다.

주말에 올라온 남편이 일요일 밤 내려갈 땐 사슴이 휑해지곤 한다. “ 여보! 일어나요 부인은 아침마다 알람처럼 전화를 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체크하듯 벨이 울린다. 기분 나쁘지 않은 감시다. 평생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둘이 두어달 나눈 말의 양이 몇 년 치는 되는 것 같단다. 지난주엔 팔짱을 끼고 소도시 뒷골목을 누비며 소주에 빈대떡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대학 시절 연애 감정이 되살아났다.

가끔은 부부도 떨어져서 사는 것이 약이 된다. 가장 가까운 사이야말로 인위적인 이격. 유사 이별을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건 치유와 자정의 시간이다. 사람은 부대끼며 사는 한 마찰이 불가피하다. 그에 의해 삶이 쓸리고 생채기가 난다. 그게 덧나서 고함 지를 만큼 아프면 갈등이 된다.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성장한 두 인격이 탈 없이 수십 년을 사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기적이다.

서로 치이며 사는 동안 각자 삶의 유형과 단점까지 투영되고 내재화되는 게 부부다. 그래서 부부는 좋건 싫건 서로 닮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짚똥처럼 무덤덤하게 살았다 한들 20년 한 이불을 덮었다면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문제의 핵심은 관심의 부재인지 모른다. 관심이 모자란 건 그간의 우리 삶이 물질의 크기를 키우는 데 너무 치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관심은 겨울 눈처럼 동시에 여러 곳에 다발적으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관심이라는 외투 속에서 사랑은 잠자고 있을 뿐이다. 이 부부의 짧은 이별은 그걸 깨우는 특효약이 되었다. 천생연분이란 없다. 긴 여행을 함께할 배필은 가꾸고 다듬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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