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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5 - 생각하는 나무 (어떤 사랑)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4-23 18:08:06
  • 조회수 97

생각하는 나무 < 어떤 사랑 > 전호림 산문

 

어떤 동아리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저녁을 먹고 2차로 입가심할 곳을 찾다가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테이블 서너 개가 놓인 카페는 한산했다.

우리 가게에서 최고로 예쁜 아이예요. . !” 마흔 중반쯤 될까? 술집 여자로는 보이지 않는 여주인이 말동무 겸 술 따르는 여자아이 하나를 소개하다 괴성을 질렀다. 동시에 여주인과 마주 앉은 C의 표정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등신불의 그것처럼 띠동갑 후배인 C와 카페 여주인 사이에 얽힌 이야기는 듣고 보니 TV드라마가 되고도 남을 만했다.

C가 여주인을 만난 건 대학 3학년 때였다. 만나자마자 둘은 불같은 사랑에 완전히 녹아내렸다. 열애가 1년 남짓 이어졌을까? 그녀가 돌연 결별을 선언했다. 순간 방음실에 들어가 문을 잠근 듯 세상 모든 소리가 차단되고 사물이 누렇게 보였다. C는 회고했다.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모든 노력은 강고한 성벽에 부딪혀 떨어지는 화살에 불과했다.

 

실연의 심연은 깊고 어두웠다. 어떻게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는지도 몰랐다. 입사 동기들이 대리로 승진하고 자신만 누락 됐음을 알았을 때야 정신을 차렸다. 마음을 다잡고 결혼을 했다. 두 번 다시 상처를 입지 않겠다는 방어기제 탓인지 결혼생활이 조금은 무덤덤했다.

 

그러나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의 공부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지금 C 부부는 행복했다. 물론 그녀의 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C와 그녀가 사랑에 빠졌을 당시 그녀의 부친은 조그마한 납품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산 직전이었다. 그런 어느 날 물건을 발주하던. 말하자면 갑의 위치에 있던 사장이 그녀의 아버지에게 딸을 며느리로 삼고 싶다고 청혼을 넣었다. 상품 팔로를 책임져 주겠다는 당근과 함께 밑질 게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딸의 의중을 물었다. 이미 몸과 마음으로 깊숙이 C를 받아들인 그녀는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뒤로 날밤을 하얗게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그녀는 결국 낳고 길러준 부모를 택했다. C와 결별은 살점을 잘라내는 고통이었다.

 

그녀는 졸업한 이듬해 결혼에 응했다. ‘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 남자를 받아들여야 내가 행복해져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남편은 부잣집 외아들이지만 내성적이고 집착이 강했다. 약간은 편집증적 증상도 보였다.

출발이 그래선지 결혼생활은 왠지 모를 의무감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이도 없었다. 그러구러 서른 중반을 지나던 어느 봄날 지방으로 출장 간 남편이 사고를 당했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이미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흐느끼던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뱉은 말 그건 그녀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랄만한 것이었다. “ 우리 차라리 잘 됐다. 그지? 00

 

친정회사는 결국 망했다. 꼬인 인생을 원망하며 갈피를 못 잡던 그녀는 친구의 물장사를 도와주러 나갔다가 스스로도 조금은 타락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거기서 장사를 배운 뒤 지금의 카페를 열었고 반년 만에 C를 만난 것이다.

 

그녀를 다시 만난 뒤 C의 발걸음은 퇴근 후 자연히 그 카페로 향했다. 김유신의 애마처럼.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마침내 끊어진 뒷이야기가 이어졌다.

 

죽은 그녀의 남편은 대학 시절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했지만 과감하게 들이대지는 못한 채 끙끙 앓고 있었다고 한다. 강한 집착을 가진 그는 돈을 써서 뒷조사를 시켰고. 그 결과 그녀가 자신의 고교동창 C의 애인이라는 걸 알아냈다. 고교 시절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C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걸 의식하는 순간 강한 경쟁심이 불타 올랐다. 그녀의 아버지 회사가 부친의 회사 하청업체라는 것까지 알아낸 그는 갑의 지위에 있는 아버지를 앞세워 그녀를 가로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사랑 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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