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나무 < 홀로 떠나는 여행 > 전효림 산문
사랑은 나르시시즘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남을 사랑하는 조건이고 출발점이라는 얘기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남을 사랑하고 싶다면 그리고 가족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면 혼자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비록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생활에 파묻혀서 부대끼다 보면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밤에 대궁이 굶어지고 봉오리가 영그는 꽃처럼 사람도 혼자 있을 때 자신과 주변을 들여다보며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고 사랑도 여문다.
국도를 타고 충청도 어는 산골 마을을 지날 때였다. 저녁밥을 짓는지 쇠죽을 끓이는지 산 아래 나지막이 엎드린 어느 집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갑짝이 마당 안 풍경이 궁금해졌다. 차를 멀찍이 세워두고 무엇에 끌리듯이 걸어가 반쯤 열린 사립문 안을 들여다봤다.
담벼락 아래엔 누렁소가 배를 깔고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때 마침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에 초로의 남편은 멍석을 만다. 곡식자루를 들인다. 이리저리 마당을 가로지르고 부인은 장독 뚜껑을 덮으랴 바지랑대를 내려 빨래를 걷으랴 부산했다. 툇마루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보아하니 숟가락을 들다 말고 비설거지를 하느라 저리 바쁜 모양이다.
런닝셔츠 차림의 그가 여위고 허술한 등짝을 이쪽으로 향한 채 뭔가를 나르고 있다. 그때였다. 퍼득 어떤 장면이 스쳤다. 내가 큰 나무처럼 기대어 있고 그 아래서 뙤약볕과 비를 피하던 존재인 내 아버지의 모습이다. 지켜보기만 해도 힘이 솟던 널따랗고 두터운 등짝. 세상에 못하는 게 없었던 무소불위의 아버지 ... ... 나도 내 자식들한테 그런 듬직한 아버지로 비춰지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어느새 어릴 적 산(山)처럼 여겼던 아버지의 나이를 나는 한참 넘어서고 있었다.
“뎅그렁”하는 워낭 소리에 소와 눈이 딱 마주쳤다.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맑고 서늘한 눈이다. 금새 터져버릴 것처럼 여린 눈, 그 속으로 빨려들면 우주 저편 어디까지고 휩쓸려 가버릴 것 같이 맑고 순한 눈이다. 흡사 내 아이들 예닐곱 살 적 눈동자다. 아버지에 대한 가없는 믿음과 의지(依支)가 담겨 있던 그 눈들. 불과 십여 년 전까지 그처럼 맑고 투명했던 눈에 대고 요즘 나는 고함을 지르고 때로 험한 말을 밷는다 그다지 대수롭지도 않는 일에.
노부부는 어느새 겸상을하고 앉아 있다. 삶은 호박잎 쌈인지를 남편 입에 넣어주려고 재촉하는 모양이다. 조근조근 얘기를 나누며 수저를 달그락거리는 모습 그건 내 마음속에 가장 안온하고 화목한 장면으로 남아 있는 영상이다. 오랜 시간 전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여준.
나는 아내한테 저렇게 살가운 남편일까? 쌈을 얻어먹을 만치. 아이들 한테도 또 얼마나 의지가 되는 아버지일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왠지 지금의 내 삶이 소꿉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적 부모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였고. 지금의 내 삶은 어쩐지 만화영화 같다는 느낌이다.
땅거미가 제법 짙게 내리깔렸다. 숙소까지는 부지런히 차를 몰아야 한다. 덩그러니 빈 차에 올라 시동을 켰다. 비로소 뒷좌석이 비어 있음을 내가 혼자임을 깨달았다. 불현 듯 서울에 두고 온 가족이 생각났다. 까마득이 잊고 있었던 눈동자들이.
가족이고 뭐고 떡이 된 머릿속을 싹 비울 시간을 갖자고 얽히고설킨 세상사를 툭툭 잘라버리고 표표히 떠나자고 했던 나였다. 그렇게 떠난 지 불과 하룻밤도 안 돼서 마치 어떤 주술적인 치유에 의지한 듯 머릿속이 맑아졌다. 아까 그 소의 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