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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김장김치(김윤덕 글) - 2019.03.05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9-03-18 10:09:52
  • 조회수 4803

생각하는 나무 " 마지막 김장김치 " 김 윤 덕 글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전 이야기가 어둠을 덥고 숨어 있는 것을 찾아 양지바른 창가로 밀어 냅니다. 계절에 어울리지는 안치만 봄 햇살에 살짝 흔들어 마음의 향기를 나누고 싶어 옮겨 봅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남의 이야기지만 궁금하잖아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혹시 보고 마음에 와 닫는 이야기가 있으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예쁘게 접어 마음에 담으세요.

 

들녘이 단풍으로 요란하더니, 밤새 내린 비에 가을이 졌다.

택배는 받았느냐, 김칫국물 흐르지 말라고 겹겹이 싸맨 것인데 짐꾼들 우악스러운 손길에 터지지 않았나 걱정이다. 까만 봉지에 든 건 참깨와 홍고추고 신문지에 둘둘 만 건 시래기다. 포일에 감은 건 담뿍장인데 팔팔 끓여 고추장 들기름 한 숟갈씩 넣고 비벼 먹으면 도망간 입맛이 돌아올 게다. 다만 올해 김장 맛은 심통치 않구나, 혀가 무뎌져 짠지 싱거운지 도통 분간할 수가 없으니 그래도 쭉쭉 찢어 갓 지은 밥에 얻으면 내 손주들이 먹어주려나 생굴 넣은 김치는 고생하는 어멈들 위해 따로 담근 것이니 늙으니 정성이라 여기고 맛나게 먹어다오.

각설하고 일전에 너희 시아버지 호통은 마음에 담지 말거라 말은 그리 덧정머리 없이 해도 속은 순두부처럼 무른 양반이다. 다시는 보지말자 큰소리쳐 놓고는 성탄절에 손주들 뭘 사서 부칠까 궁리하느라 읍내 문방구 문턱이 닳는다. 상속 운운한 것은 서울 집값은 자고 일어나면 열배 스무 배로 뛰는데 시골 집값은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이니 부아가 나 저런다.

 

세상은 좀 수상하더냐. 스무 해 서른 해를 길렀어도 종시 마음 놓이지 않는 게 자식이요. 가슴이 솥바닥처럼 그슬리는 게 어미라 잠이 오질 않는구나. 정쟁도 겪고 IMF도 겪었으나 혼돈 시절엔 그저 좌우로 기울지 않고 제 본분 다하는 것이 최고였다. 사람 사귀는 일도 소금쟁이 풍금 건반 짚듯 해야 한다. 할 줄 아는 게 남 탓이요, 조롱인 자 나만 옳다고 종주먹 을러대는 자들은 멀리할지니 행여 풍파가 닥치더라도 몸만 성하면 쓴다.

달팽이가 바다를 건넌다고 천천히 가면 뭐 어떠냐. 그까짓 돈 잠시 없으면 또 어떠냐. 중한 건 언제나 사랑이었단다. 따뜻한 손 다정한 말 향기로운 입김과 눈길이 벼랑 끝에 선 사람을 살리는 법이다.

 

내 배로 낳은 아들들이라 너희 눈엔 밉기도 할 테지 복부 가르는 수술을 하고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굶게 생긴 남편과 자식 밥해 먹인다고 아픈 배 움켜쥐고 부엌으로 나갔으니 그렇듯 나약하게 키워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단점어 어디 한 둘이랴 큰애는 고지식한 책상물림이라 입만 열면 속 터지는 소리요. 둘째는 콧물만 찔끔 나와도 나 살려라 엄살떠는 게 다섯 살부터니라. 셋째는 물샐 틈 없는 구두쇠니 약빠른 고양이 밤눈 어둡다고 실속이라고는 없으니 그래도 어희 시아버지처럼 한눈파는데 없으니 미쁘지 아니한가. 세상에 별 남자 없다. 천하의 신성일도 흙으로 돌아간다. 꽃도 반만 핀 것이 곱다고 모자란 듯 빈 데가 있어야 이쁜법. 자식은 떠나도 서방은 남아 등을 긁어 주느니 목석같은 여인과 한평생 살아 준 저 사내가 고맙고 애틋해지니 이 무슨 조화인고.

 

아마도 내 생애 마지막 김장이 될 듯하다. 걸핏하면 전신에 모닥불을 퍼붓는 듯 하고 가슴은 바짝바짝 조여오니 정신이 다 몽롱하다. 어젯밤엔 나 열일곱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른 거리니 꿈인가 생시인가 병약한 맏딸이 열감기 걸리면 밤새 머리 짚어 주시다 광에서 가져와 깎아주시던 무는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함박눈 내린 날 동생들과 눈사람 굴리던 기억도 나는구나. 숯덩이로 눈썹을 달고 버선 모자 씌워주면 둥글둥글 귀여우면서도 손 없고 발이 없어 어디 도망도 못가고 밤새 찬 마당에 서 있던 눈사람이 가엾기만 하더니 대식구 섬기느라 마실 한번 맘 편히 가보지 못한 내 신세가 꼭 그와 같구나. 꽃가마 타고 시집오던 날에도 눈보라가 쳤던가. 소금으로 국을 끓여도 맛나던 시절 저 눈이 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던 날도 있었단다.

팔자 도망을 못한다고 뛰쳐나가고 싶은 적 왜 없을까만 어디 갈 때가 있어야지 한줄기 햇살에 한 줌 물로 사라지는 눈사람처럼 이승과 영영 작별하면 한 마리 새로 날아올라 지구 끝까지 가보고 싶구나.

 

고맙고 미안했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은 못되어도 며느리들한테 모질었단 소리 안 들으려 애는 썼느니. 섭섭한 것 있더라도 많이 배운 너희가 품어다오 나 죽으면 막대 잃은 장님 될 그 양반이 걱정일 뿐 후회는 없다. 내 비록 까막눈이나 온 졸일 허리 구부려 일하며 이마에 흐르는 붉은 땀을 먹고 살았다. 춤 잘 춘다고 훈장은 줘도 평생 소처럼 일만하고 산 여인에게 주는 상은 없으니 못 배워서 인가. 하여. 나죽거든 묘비에 한 줄 새겨다오 " 잘 살았다. 잘 견디었다." 그것으로 나는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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