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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나무(그리스도의 향기)-2018.07.17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8-08-21 15:31:56
  • 조회수 2126

생각하는 나무 < 그리스도의 향기 > 김 수환 글

 

20여 년 전 명동 성모병원에서 김 데레사라는 수녀 한 분이 위암으로 죽었습니다. 이 수녀는 독일에 있는 재속수도회 소속이고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된 사람이다. 나는 이 수녀를 개인적으로 잘 알기 때문에 죽기 전에 여러 번 병문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병실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방을 나서기만 하면 내 마음에 평화를 느끼는 것입니다. 거의 매번 같은 체험을 하게 되어, 나는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과 일치 된 사람이 풍기는 향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뇌성마비 환자로서 [ 어는 불행한 탄생의 노래 ]라는 시집을 펴낸 서 정슬 안젤라도 그렇습니다. 뇌성마비 때문에 얼굴 모습이 형편없는데 그 녀는 늘 ' 웃는 예수 '라는 그림의 예수처럼 웃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보기 나름일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펴낸 시집 후기에서 " 한 조각구름 되어 푸른 하늘을 흘러가 봤으면... ... 한 마리 비들기 되어 숲속을 날아 봤으면 ..... ..... "이라고 적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다음과 같이 소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불안스러워 보이고 약해 보이는 나일지도 모르나 나를 가냘픔 속에서 꿋꿋하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작은 웃음을 잃지 않게 말없이 흥얼거릴 수 있게 지켜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 언제 부터인가 나에게 당신을 확실히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렴풋이 신의 보호를 느끼면서도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부르짖던 슬픔의 억지를 쓰던 내가 이제는 감사의 기도를 할 줄 알게 되었다니! 이 다행스러움을 어디다 비기겠습니까? 역시 어느 누구에게나 삶이란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어둠 속의 내게로 다가 오셨을 떄 부터 나는 야훼는 나의 목자라는 노래를 즐겼습니다.

그녀가 만난 하나님은 분명히 철학적인 신이나 신학적인 신과 같이 추상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신 분이고 안젤라와 깊이 사랑의 친교를 맺고 있으며 그녀를 사랑으로 밝혀 주고 위로해 주고 힘을 주는 분이며 그녀의 인생을 가장 값지게 살게 하는 분입니다. 때문에 그녀는 신체장애자인데도 ' 역시 삶이란 어느 누구에게나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절망에서 건진 삶의 아름다움

신문을 보면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병들어서 조그마한 고통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삶을 옆으로 제쳐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안젤라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헬렌 켈러가 많은 이의 삶을 밝히는 빛이 되었듯이 안젤렐라와 같은 사람도 분명히 지체장애자들 뿐 아니라 건강한 우리까지 포함하여 많은 이를 밝혀주는 빛의 구실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왜 인간에게는 이러한 일치가 필요하게 되었습니까?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인정과 사랑입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고 사랑 받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합니다. 만일 어느 누구로부터도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인간은 그 고통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습니다. 삐뚤어지고 더 심하면 미치든지. 아니면 절망하여 자살까지도 불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 인정과 사랑을 항상 기대할 수 있습니까? 보통 인간의 사랑이란 얄팍합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인물이나 성품이 좋다든지 자기에게 잘해 준다든지 할 때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늘 인물이 고울 수 없고 착한 성품일 수 없을뿐더러 건강한 이도 병들 수 있고 젊은 사람도 언젠가는 늙습니다.

우리말에 3년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해할 만 합니다.누구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병자 입장으로 볼 때에는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이 가장 사랑이 필요할 때에는 바로 이럴 때입니다. 보잘 것 없는 존재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을 때 무엇보다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바로 그럴 때에 물러납니다.

 

예수님이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에 찾아 주었다.고 하면서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 라고 한 말씀은 바로 이런 때를 두고 한 말씀 같이 생각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바로 그런 상태에 언젠가는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사랑의 돌봄이 가장 필요한 때 버리지 않는 사랑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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