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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나무(空間(공간)의 生産(생산))-2018.06.05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8-07-03 15:41:04
  • 조회수 2241

생각하는 나무 空間(공간)生産(생산) ” 김 정운 글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야 한다는 김 정운 문화심리학자의 인생 독백을 함께 들어보려합니다.

그는 최근 복잡한 도심을 떠나 여수로 둥지를 옮겼다. 그리고 가끔 여수 예찬론을 독백 처럼 말한다. 오늘 함께 나누는 글도 그의 空間(공간) 철학에 따른 대화의 한 토막이다.

여수에 살면 뭐가 좋으냐고 묻는다.

파랗다!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파랗다. 그러나 정말 피부로 느끼는 행복감은 운전이다.차가 전혀 안 막힌다. 아무리 막힐 때도 신호등 한 번 바뀌는 정도만 기다리면 된다. 여수시의 주차 씨스템 또한 환상적이다. 곳곳에 공용주차장이 있고 처음 1시간은 무조건 무료다. 최근 내가 여수시로 주소를 이전한 이유는 이 착한 도시에 세금을 제대로 내기 위해서다.

여기까지가 참 착하게 억지를 부리는 여수 예찬론이다. 나는 반문 해본다 여수만 그렇까 ? 지방 신도시들이 억울하다고 멱살잡이를 하려들 도시문화 예찬을 떼쓰듯 부린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 모른다. 내가 서울에서 운전하며 가장 괴로울 때는 차선을 바꿀 때다.

다들 차선을 바꾸겠다는 신호를 빨리 달려오라는 신호 로 받아들인다. 뒤에 처졌든 차들도 잽싸게 달려들어 차선을 바꿀 여유를 절대 안 준다. 어 어 하다보면 뒤에서 빵빵 거리며 난리가 난다. 정신이 혼미해지며 그냥 울고 싶어진다. 주로 남자들이 그런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자기 자동차 앞을 양보하면 인생 끝나는 줄 안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걸까?

자동차를 운전하는 분이라면 공감되는 글이다. 차선 변경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변경하려면 나에게는 양보란 단어가 없다는 개인 우월주의자들에 의해 형성된 운전문화에 치어 심장 박동이 그 수치를 추월하게 된다는데 공감한다.

 

이는 자동 안이 유일한 자기 공간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집의 안 방은 아내 차지가 된 지 오래다. 아이들도 이제 안방은 엄마 방 이라고 한다. 거실은 TV와 뜬금없이 커다란 쇼파가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코를 심하게 골아 같이 잠을 자지 못하겠다는 아내의 불평에 거실 쇼파에서 잠을 청한지 이미 수년째다. 수면 무호흡으로 이러다 죽겠다 싶어 잠을 깨면 거실 바닥에 너부러져 있다.

그렀다. 남성의 권위를 주장하던 시대는 참 멀리 떠나가 시간의 뒤안길이 된지 오래다. 아이들에게는 아니 한 가정에 가장이 엄마로 타이틀을 거머쥐지가 오래 되었다.

그래서 남성들에게 자동차 안이 그렇게 행복한 거다. 한 평도 채 안 되지만 그 누구도 눈치볼 필요가 없는 나만의 공간이다. 밟는 대로 나가고 서라면 선다. 살면서 이토록 명확한 권력의 공간 을 누려 본적이 있는가? 그러니 도로에서 누가 내 앞을 막아서면 그토록 분노하는 거다. 한국 남성들이 진지하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은 없다. 모든 문제는 거기서 시작 된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 핵심 내용이다. 공간은 그저 비어있고 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다. 공간은 매순간 인간 상호 작용에 개입하고 의식을 변화시킨다. 오늘날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에서 공간은 아주 새롭게 각광 받는 주제다.

그동안 시간(time)에 밀려 시답잖게 여겨졌던 공간(space)이 갖는 문화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려는 학자들의 시도를 공간적 전환(spatial turn)이라고 부른다.

아파트라는 주거 문화가 우리나라 남성들의 조급하며 쓸쓸한 성격으로 인성을 바꾸고 있다. 전통 가옥에는 사랑 방 이라는 가부장적 공간이 아주 폼나게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 주거 문화가 도입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남자의 공간은 사라지고 아주 못된 가부장적 가족환경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여자와 자식뿐만 아니라 남자만의 공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TV보는 거실을 없애서라도 남자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은은하게 조명을 밝히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는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도 진열해 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생존감도 생기고 자존감도 생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자기 전 자기만의 공간에서 하루를 성찰하며 차분히 기도도 드려야 한다. 아이들이 자기 방문을 잠그기 시작하면서 남자 마음의 문도 잠기게 된다. 대화의 단절이 가져오는 가족 생활공간에서의 공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최근 가족의 개념이 가족상호 존재 가치를 희소시키면서 밀려들어오는 것은 개인주의 문화다. 상실된 가족개념을 조금이라도 되찾으려면 각자의 개별 된 공간과 병행 가족 간 소통 공간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 는 것이 저자의 공간문화 생산성 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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