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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나무( 김명환의 시간 여행 )-2018.04.24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8-05-21 14:02:02
  • 조회수 2246

생각하는 나무 김명환의 시간 여행

 

1975114일자 신문기사에 실린 내용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우유 이야기를 불쑥 꺼냈습니다. ‘ 나는 지금도 데우지 않은 우유를 먹지 못합니다. 찬 우유를 먹으면 배탈이 납니다. 헌법도 우리에게 맞는 헌법이 아니면 안 됩니다. 당시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론에 맞서 한국 실정에 맞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을 펴기 위한 비유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대통령이 소화하기 어려운 것의 대표적 사례로 우유를 꼽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정도로 지난 시대엔 우유만 먹으면 탈 나는 사람이 꽤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유를 별로 마시지 못하고 자랐기에 유당 분해효소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 우유란 소화하기는 어려웠어도 몸 생각해서는 챙겨 먹으려 했던 식품입니다.

 

1950년 대 군 당국이 영양실조에 빠진 병사들에게 원기를 회복하라며 특별지급한게 신선한 목장 우유였습니다.

1960년 대 초반엔 전국 초등학생 400여만명 중 100만명 이상이 결식아동 이었습니다. 영양실조를 우려한 정부가 19622월부터 시작한 게 초등학교 우유 급식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준 우유를 마신 아동들이 배탈이 잦았습니다. 학부형들이 날씨도 쌀쌀한데 찬 우유를 먹이기 때문에 배탈이 난다고 우유를 덥혀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學者(학자)들로부터 우유를 데우면 영양소가 파괴되며 병균도 오히려 늘어난다는 비판을 듣고 멀쑥해 졌다.

 

여름마다 우유 식중독이 터졌다. 그래서 우유를 팔팔 끓여 먹자는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으면 당시 우유에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수돗물에 타서 우유라고 속여 파는 게 많았다.

진짜 우유를 상징하기 위해 목장 우유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유를 그렇게 귀하게 여기던 시절은 어디로 가고 이젠 소비가 격감해 낙농가에 비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주 소비층이었던 학생들 사이에 인기도 떨어졌다. 얼마전 TV 뉴스 화면에 일부학생이 급식 때 받은 우유를 교실 창밖으로 던져 터트리는 모습이 방영 돼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유가 탄산음료에 밀려 찬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자극적 음료 소비가 늘어난 탓에 惡貨(악화)良貨(양화)를 구축하듯 저급식품이 고급식품을 밀어내는 음식 문화의 퇴보시대에 접하고 있습니다.

김대식 교수의 인간은 꼭 일을 해야 하는가? ”

 

인간은 꼭 일을 해야 할까?

어느 때보다도 높은 청년 실업률과 인공지능 시대에 사라질 일자리 걱정이 사회적문제로 토론되고 있는 오늘날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질문이겠지만 답도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먹고 살고 자식들 교육시키기 위해 일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고대 그리스인들은 두 가지 일을 구별했다고 합니다. 생존에 필요한 고되고 힘든 노동(포노스 ponos)과 스스로를 교육시키고 공동체 운영에 참여하는 프락시스praxis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등 모든 그리스 철학자들이 추구하던 삶은 포노스 없이 프락시스를 즐기는 여유로운 인생이었겠다. 하지만 그들의 철학에는 허점이 하나 있었다. 노예와 여성의 고된 노동 없이 그리스 엘리트들의 우아한 여가 생활은 불가능 했으니 말이다.

 

반대로 육체적 노동과 노력으로 거대한 제국을 일으킨 로마인들에게 노동은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그리스 문명의 우아한 프락시스를 우러러 보면서도 고된 노동의 도덕성을 높게 평가 했다.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신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과정이라고 믿었던 중세기에 노동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 기도하고 일하라 신을 위해 인간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하고 일하는 것이다.

드디어 20세기 초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서유럽의 원동력은 노동, 그 자체를 숭배하는 개신교 국가들의 노동윤리라고까지 주장하게 되었다.

일없는 삶을 추구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일 없는 삶을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을 보면 얼마나 신기해할까? 인간은 당연히 먹어야 살고 살아야 하기 위해 먹어야 하며 먹기위해서는 대부분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일 그 자체가 성스럽거나 숭배의 대상일 필요는 없다고 한다.

뿐만 아니고 노동은 인간의 권리가 아니다. 인간의 진정한 권리인 행복을 위해 잠시 필요했던 도구일 뿐이다. 더는 필요 없는 일자리를 유지하고 만들어 내는 것 보다 더 빠른 기술 발전을 통해 드디어 일 없이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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