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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나무(大韓民國과 中國의 國家觀 조선일보에서 발취)-2017.05.02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7-05-22 13:53:28
  • 조회수 2857

생각하는 나무 大韓民國中國國家觀 조선일보에서 발취

 

신지핑 중국 국가주석이 4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 고 말했다고 전해지면서 중국의 韓國觀(한국관)이 관심을 끌고 있다. 시 주석이 했다고 알려진 발언은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한. 중관계사에 대한 중국학계와 국민의 일반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 역사학계는 한국이 한민족 형성의 두 기둥으로 삼는 북방의 濊貊族(예맥족)과 남방의 韓族(한족) 중에서 韓族(한족)만 한국사의 영역으로 간주한다. 고구려. 부여. 발해 등 예맥족이나 그 후예가 세운 나라들은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 따르면 만주는 물론 대동강 이북도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중국의 영토가 된다.

 

삼국시대 이후 19세기 말까지 한. 중 관계는 동아시아의 朝貢(조공)冊封(책봉)질서 속에서 이뤄졌다. 중국 주변의 나라들이 중국황제에게 책봉 받고 공물을 바치면 중국이 답례품을 보내는 호혜 관계는 중국과 주변 국가들의 왕조 교체에 관계없이 지속됐다.

중국은 租貢(조공) 冊封(책봉) 질서가 종주국과 부속국의 지배 예속 관계였다고 주장한다.

 

중국 王祖(왕조)浮沈(부침)에 따라 구체적 실상을 달리하던 한. 중 관계는 19세기 후반 동아시아가 서양 열강의 침략을 받으면서 변화했다.

 

1876江華島條約(강화도조약) 이후 일본과 서구 열강이 조선에 접근하자 중국은 조선에 대한 형식적 종주권을 실질적 지배권으로 전환하려 했다.

壬午軍亂(임오군란)甲申政變(갑신정변) 이후 조선의 監國(감국)으로 부임한 원세계는 10년 동안 조선의 내치와 외교를 총괄했다.

 

조선은 1898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18954월 체결된 시모노세끼 조약 은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한 독립국임을 인정 한다. 고 선언했다.

 

. 중간의 전통적인 租貢(조공)冊封(책봉)체제는 폐지됐고 두 나라는 18999월 한. 청통상조약을 체결하여 대등한 근대적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조선이 중국의 오랜 屬邦(속방) 이라는 인식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뒤 중국국민당은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는 이유로 한국은 중국의 蕃俗(번속)이었고 그 혈통이 서로 통하는 殷周(은주)의 후예로 우리중화민족의 한 支流(지류) 라고 했다.

 

1911辛亥革命(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세워진 뒤 편찬된 淸史稿(청사고)屬國列傳(속국열전)에 포함시켰다.

중국이 200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新淸史(신청사)도 이런 전례를 따르고 있다.

 

한반도는 우리 것이라는 인식이 중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 신 지핑 주석이 했다는 발언은 원세개적인 발상이 지금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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