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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나무(땅의 역사)-2017.02.14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7-02-27 13:58:55
  • 조회수 3210

생각하는 나무 땅의 역사 박 종인 글

 

강원도 춘천은 미스터리의 都市(도시). 멀정한 都市(도시)에 어느날 갑짝이 호수가 생겼으니 그 첫째 미스터리요. 그 옛날 춘천 땅에 있던 貊國(맥국)이라는 古王國(고왕국)이 마술처럼 사라졌으니 둘째 미스터리요. 그 미스터리 왕국 땅 서면 방동리 산기슭에 한 사람을 묻은 무덤이 세 개나 있으니 이 또한 수수께끼다.

 

사람 하나 무덤은 셋

심숭겸( ~ 927)은 전라도 곡선 사람이다. 춘천에서 자랐다는 기록도 있다. 후 삼국시대 新天地(신천지)를 꿈꾸는 왕건과 피를 나눈 형제가 되었다. 서기 927년 견훤이 신라 경주를 침략해 만행과 약탈을 자행하였다. 이에 구원 출정한 왕건이 대구 팔공산까지 진격했는데 견훤부대를 당해 낼 수가 없어 살아남은 100여 병졸과 함께 벼랑 끝까지 쫓겼다. 그때 심숭겸이 왕건에게 이리 말했다. “ 내가 형님과 군복을 바꿔 입고 싸우겠습니다.” 신숭겸은 견훤 진영으로 돌진해 싸우다 목이 베어 죽었고 왕건은 무사히 탈출했다.

 

목 없이 돌아온 의형제 시신 앞에서 왕건은 울었다. 그리고 자기가 묻히리라 미리 봐둔 명당 터에 아우를 묻었다. 사라진 목 대신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함께 묻었다. 도굴꾼이 파갈까 두려워 봉분을 세 개 만들고 묻었다. 그게 바로 춘천 방동리에 있는 장절공 신숭겸 장군묘다.

 

백제 온조와 13(기원6) 5월 어느날 왕이 말했다. “ 북쪽 말갈이 변경을 침공하여 편한 날이 없다. 반드시 도읍을 옮겨야 겠다. 漢水(한수) 남쪽을 보니 토양이 비옥하였다. (三國史記(삼국사기)” 그리하여 온조는 하북 위례성을 떠나 하남 위례성으로 首都(수도)를 옮겼다. 백제는 이후 북방 침략을 피해 웅진과 사비로 끝없이 남하 하다가 660년 나당 연합군에 멸망했다.

그 남하의 첫 번째 원인 제공자가 바로 말갈, 그러니까 백제 북쪽 변경을 침공하던 貊國(맥국) 말갈은 동북아시아 도처에 분산돼 살던 족속을 통치하는 말이다. 여러 古書(고서)에는 이 貊國(맥국)이 지금 춘천 땅에 있던 부족국가로 기록 되고 있다. 三國遺事(삼국유사)에 보면 春州(춘주)는 예전의 牛首州(우수주)인데 옛날의 貊國(맥국)이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韓民族(한민족)을 구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족속이 濊族(예족)貊族(맥족)이다 강릉지역 예족은 일부 흔적이 남아 있지만 춘천에 있던 맥국은 연기처럼 종적을 감췄다. 이우가 있다. 조선후기 實學者(실학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춘천이 산이 깊고 험해 다투지 않는 지역이 됐다.

21세기 춘천문화원이 내놓은 춘천 역사에도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 평야지대가 발달하지 못하여 인구밀도가 낮았으며 산물이 풍부한 편은 아니었다. 고 평가했다.

쉽게 말해서 맥국이 있던 없던 주변의 강대국들이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學界(학계)에서 放棄(방기)된 나라라고 표현할 정도다 전설에 따르면 맥국 마지막 왕 태기는 신라군에 평창까지 쫓기다가 산중에서 자살했다 그 산이 지금의 태기산이다.

 

신북에는 맥국 왕궁터가 있는 왕대산이 있고 궁터라는 지명도 남아 있다 동면 월곡리에는 맥국 왕의 무덤이라는 陵山(능산)도 있다. 637년 선덕여왕 6년에야 신라 영토로 편입 되었으니 무려 600년 넘도록 존재한 나라였다.

 

춘천시민은 발산리에 貊國(맥국) 있었음을 알리는 맥국터 기념비를 세웠다.

 

淸平(청평) 巨事(거사) 李資玄(이자현)

1089년 나이 스물여덟에 고려 국립국악원 원장 격인 大樂署丞(대악서승)이 되었으나 곧바로 사직원을 내고 사라진 이승현. 姑母(고모) 셋을 모두 文宗(문종)王妃(왕비)後宮(후궁)있었고 훗날 조카 딸들도 睿宗(예종)仁宗(인종)()가 되었다. 딸 셋을 임금에게 바친 할아버지 이자연과 역시 딸들을 왕에게 들여보낸 四寸(사촌) 이자겸이 딸들을 수단 삼아 권세를 누리는 꼬락서니를 두고보지 못하여 마침내 아내와 사별하자 이자현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道士(도사) 殷元忠(은원충)을 따라 窮僻(궁벽)한 춘천 땅으로 숨어들었다.(청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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